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 20년 <하>서울 강서도매시장의 시장 도매인제

입력 2008-06-18 09:26:54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은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은 '법인 경매'와 '시장도매인' 2가지 유통체제를 경쟁시키는 곳이다. 따로 경매시간을 기다릴 필요없이 언제든 농산물이 들어오고, 판매되는 강서농수산물도매시장 시장도매인제 상가 모습.

경북 경주가 고향인 배말석(사진·감자들고 있는 사람)씨. 그는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시장도매인'을 한다. 감자 등을 취급하는 그가 농산물 유통을 통해 한해 올리는 매출은 무려 120억원에 이른다. 대구의 웬만한 중소제조업체 연간 매출액과 맞먹는 규모다.

그는 '농산물 박사'다. 학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농산물을 '딱 보면' 안다. 그래서 농민들이 그를 찾아온다. 경상북도 농산물이 제일 좋다고 말하는 그는 고령군에 49만5천870m²(15만평) 규모의 감자 계약재배까지 하고 있다.

"농산물은 아는 사람이 팔아야 합니다. 그래야 생산자에게도 제값을 주고, 소비자도 믿고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은 대구와 달리 '시장도매인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법인→중도매인이라는 이중적 구조가 아닌 산지 생산물이 들어오면 시장도매인이라는 단일 유통채널을 통해 물건이 유통됩니다. 유통채널이 줄어들고, 경매시간을 맞추기 위해 기다리는 법이 없으니 농민들은 좋아하죠. 매년 25%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은 유통채널의 감소가 얼마만큼 큰 효과를 실현하는가를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에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성적 보이길래

2004년 문을 연 강서도매시장은 대구처럼 경매제도를 도입하는 동시에 시장도매인제도 넣었다. 두가지 유통체제를 경쟁시켜보자는 것.

하지만 시장도매인제는 아직까지 '생소한 제도'라는 이유로 시장안에서 많은 면적을 할애받지 못했다. 이 시장 전체 건물면적의 75%는 경매제 시장, 25%만 시장도매인제다.

건물 면적으로만 따지자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그러나 지난해 기준으로 시장도매인제는 25만1천여t, 경매제는 24만5천t의 거래실적을 올리면서 시장도매인제가 경매제 거래물량을 따돌렸다. 훨씬 좁은 면적의 시장도매인제이지만 거래물량은 오히려 큰 면적을 차지하는 경매제 시장을 앞선 것이다.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의 시장도매인제도는 지난해 전년대비 12% 성장, 그 전해에는 17% 자랐다. 연매출 200억원을 넘긴 곳이 2곳, 100억원을 웃도는 곳은 8곳에 이른다. '쪼그라드는'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비결은 뭘까?

시장도매인제를 함으로써 '유통 채널'이 한단계 줄었다. 농산물이 들어와서 법인 경매에 붙여진 뒤 또다시 중도매인을 통해 판매되는 경매제 하에서의 '이중 구조'가 사라진 것이다.

경매를 통하지 않고 바로 시장도매인을 찾아감으로써 농민들도 자유를 얻었다. 언제라도 물건을 도매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된 것. 경매제도 아래였다면 꿈도 못꿨을 터.

한해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강서농산물도매시장 시장도매인들은 "다음해 뭘 심어야할지까지 농민들과 의논하는 대상이 됐다. 농민들이 '유통 전문가'로서 우리를 인정하니 당연히 매출이 매년 두자릿수 성장한다. 농산물 소비자들도 이 곳으로 몰린다. 대형소매점은 직접 산지에서 물건을 가져간다고 알고 있나? 아니다. 대형소매점도 이 곳을 찾아와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해간다. 시장도 유통체제를 변화시키면 대단한 효율을 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는 왜 안되나?

시장도매인제 추진을 위한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 구성원들의 노력은 이미 몇년전부터 시작됐다. 수차례 민원이 올라갔고, 대구시도 이를 받아들여 연구용역까지 수행했으며 이 용역보고서는 시장도매인제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여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시장도매인제 추진위원회 신상기 위원장은 "법인 경매를 완전히 없애고 시장도매인제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두 체제를 경쟁시켜 농민들에게 선택권을 주자는 주장인데 이것조차 못받아들인다는 것은 대구시가 위기에 빠진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살릴 의지가 없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대구시 김인용 농수산팀장은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검토중이지만 기존 경매제의 주축인 법인이 공식적으로 대구시의 지정을 받아 활동중인 터라 쉽게 제도를 바꾸기는 어렵다. 더욱이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하려면 새로운 장소가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도 마땅치않다. 새로운 제도 시행을 위해 농림부의 승인을 요청한 상태여서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농림부는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위한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대구시에 요건 충족을 위한 조치를 주문해 뒀다. 이 결과를 보고 승인 여부가 최종 결정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농수산물도매시장내 법인들의 단체인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 법인협회' 서판대 사무국장은 "공간과 시설을 추가로 확보해야만 새 제도인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할 수 있다. 기존 경매제도를 위축시키면서 시장도매인제를 할 수는 없다. 이는 형평성에 맞지 않다. 여태까지 농산물도매시장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해온 법인의 손발을 묶어놓는 일방적 제도변경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글·사진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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