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대구 달서구에서 살기

입력 2008-06-16 07:04:28

어느 날 주민등록초본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5번 이사했고, 약 4년 정도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서 생활했을 뿐 그 외 약 14년을 달서구에서 생활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삶의 근거지를 정할 때에도 고향이나 직장 근처에 있으려고 하는 것은 낯선 것을 싫어하는 저의 습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새로운 시도를 해봅니다. 낯선 사람과 포옹하며 인사하고, '나'에 대한 얘기도 나눕니다. '나'와 관련 없는 이들에게 '나'에 대해서 다섯을 얘기해주면 상대방도 자신의 셋까지는 드러냅니다. 낯선 이들을 통해 솔직한 자신을 찾는 것이 오히려 쉬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달서구에 살면서 익숙하지 않는 작업을 통해 '나'의 한 귀퉁이를 볼 수 있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확인해갑니다. 가끔 아침에 학산을 오릅니다. 100여m 높이의 동산이기는 하지만 꿩 울음소리를 들으면 가슴 속에 작은 불꽃 같은 게 확 오릅니다. 가까이 있는 앞산의 달비골에서 반딧불이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달서구에 계속 살게 된 것이 가까이에 참 좋은 자연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군요.

오래된 이웃들이 많습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매일 이웃들은 번갈아가면서 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습니다. 혼자 남은 저는 매일 성찬을 먹었습니다. 아내는 지친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너무나 평온한 저에게 외롭게 지내지는 않았느냐고 묻지도 않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이웃들의 다정한 배려를 발견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몇 해 전 이웃의 여러 가족들과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송년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갈탄 난로를 피워 음식도 만들고, 함께 노래 부르며, 놀이도 했습니다.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 너무나 즐거웠고, 유쾌했습니다. 며칠 후 이웃 사람이 직장동료에게 송년행사 얘기를 했더니 동료는 '달서스럽게' 행복을 찾는다고 얘기를 했다고 했습니다. 연말연시에 해외여행을 하는 이들도 많은데 비닐하우스에서의 하룻밤이 뭐 그렇게 큰 행복이고, 큰 기쁨이냐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비닐하우스에서의 함께 어울림은 소박하지만 흐뭇한 기쁨이었기에 '달서스럽다'는 게 비아냥거림으로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달서구에서 오래 살게 된 게 정다운 이웃과 함께했기 때문이기도 하군요.

집으로 가는 길에는 주공 임대아파트가 있고 그들이 자주 찾는 복지관 일을 오래 했습니다. 복지관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든 일상 속에서도 희망의 불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키워가는 이들을 보면서 가슴 속에 큰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도 달서구에 오래 살게 된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어울려 살면서 기쁨과 아픔을 나눠 가져야만 '나'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김승규(변호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