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영화를 보자] '노 맨즈 랜드'

입력 2008-06-14 09:02:07

KBS 1TV 16일 0시 50분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은 참혹했다.

저격수가 아이를 겨냥해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죽은 엄마 옆에 천진난만한 아이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외신사진은 보스니아 내전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잘 보여주었다.

16일 0시 50분 KBS1TV 명화극장을 통해 방영되는 '노 맨즈 랜드'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가 대치하고 있는, 말 그대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그 곳의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코믹하게 그린 영화다.

눈에 띄는 것마다 총알 세례를 받는 땅 '노 맨즈 랜드'. 누구의 땅도 아닌, 그러나 아무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 그곳에 생존자가 발견된다. 흰 티셔츠를 펄럭이며 '살려 달라!'고 필사적으로 외치는 남자가 있다. 자세히 보니 한 사람이 아니고 세 사람이다. 총구를 맞댄 두 남자와 또 다른 한 남자. 그 남자는 지뢰를 깔고 누워 있다. 재채기만 해도 일대가 쑥대밭이 된다는 슈퍼 지뢰다. 그 땅에 있는 것으로도 죽음인데, 서로 적군이면서 지뢰까지 폭발 일초직전, 참으로 최악의 난국이다.

그러나 그들을 발견한 양쪽 진영은 구조는 뒷전, 적군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없고 마침내 세계평화유지군인 UN이 나선다. 그 와중에 전 세계 언론들이 특종의 냄새를 맡고 몰려든다.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그들의 구조작전. 세계 최정예 지뢰 제거병이 도착하면서 현지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뭉치면 살고 움직이면 터지는 세 남자.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노 맨즈 랜드'의 가장 큰 즐거움은 유머가 담뿍 담겨진 대사와 죽음의 목전에 둔 전쟁터 속에도 세상사 무심한 캐릭터들이다. 정작 자신들은 도외시하고 르완다 내전을 걱정하는 보스니아군과 세르비아군, 평화를 유지하는데 별 소용없는 이름뿐인 평화유지군, 특종을 위해 개미떼처럼 몰려든 전세계 생방송카메라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시시각각으로 등장해 프랑스어와 영어, 보스니아, 세르비아 방언을 뒤섞어 가면서 난장판 유머를 선사한다.

특히 죽음을 깔고 앉은 세 남자의 에피소드는 웃음 만발한다. 서로 으르렁대다가 여자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금방 또 적군의 위치로 돌아와 티격태격 아옹다옹하는 유치한 다툼을 벌인다.

그 와중에 지뢰 위의 병사는 햇볕도 가려야 하고, 화장실도 가고 싶고, 가족들을 사진도 보고 싶어 끙끙 앓는다.

적은 '벌레'보다 못한 인간으로 보고 군인이고 민간인이고 무차별 살육하는 전쟁을 웃음으로 비판한 영화다. 이유 없는 분노와 증오를 코믹하게 풍자하고 있다.

감독은 보스니아의 다큐멘터리 작가 출신 다니스 타노비츠. 그의 데뷔작이다. 칸 영화제 각본상,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골든글러브 외국어영화상, LA 영화비평가 외국어영화상, 세자르 신인작품상, 프랑스영화비평가협회 외국어영화상 등 상을 휩쓴 작품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