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촛불, 희망이기를

입력 2008-06-10 07:00:00

새정부 출범 100일 갓 넘긴 지금, 대한민국은 극히 혼란스럽다.

수백명에서 촉발된 촛불시위는 수십만명으로 불어났고, 쇠고기 반대에서 급기야 '이명박 정권 퇴진' 구호까지 등장했다. 가위 충격적이다. 국민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부는 물러나야 한다는 분노가 촛불로 너무 빨리 타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연말 대선 때 국민들은 경제 대통령 이명박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보냈고, 그 신임 속에는 상당한 기대와 희망을 담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 100일 여 만에 이토록 국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으로 나락한 이유는 뭘까? 국민들이 너무 조급한 걸까?

과거 여느 정부보다 많은 숙제를 안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숙제 보따리를 푸는 족족 '오답'만 남발했다고 국민들이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의심치 않았던 신뢰가 단박에 무너졌고, 실망감이 너무 일찍 터졌기 때문이다.

지난 100일을 반추해 보자. 지난 2월 탄생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점수를 잃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꾸려 정권 인수에 나섰지만 "실속은 없고 포장만 화려했다"는 언론 지적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실용주의를 표방한 새 정부가 출범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일이 잘 풀리게 마련이지만 실용주의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고·소·영'으로 대변되는 특정 인맥, 철저한 검증을 거쳤다고 떵떵거렸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적잖은 함량 미달 인사들이 권부인 청와대와 내각의 첫 단추를 꿴 것이다. 실용주의 정부는 일 한번 시원하게 못해 보고 지난 100일을 부자내각 등 인사파동에 허둥댔고, 최근에는 대통령 측근 간 권력투쟁까지 빚어지고 있다.

이 기간 경제가 나아질 기미는커녕 유가 상승 등 각종 악재가 속출해 서민들의 가계를 옥죄기만 했다. 정부도 긴급 경기 회복 처방을 내놓긴 했지만 '경제 정부'라는 기대가 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지난 수년간 팍팍한 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초상집에 기름 붓듯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이라는 '최악수'까지 뒀다. 국민들은 이를 "또 일 저질렀다"며 분개했고, 대규모 촛불시위로 정부의 실정을 질타했다. 우려(높은 기대심리)가 현실(빠른 실망감)로 나타났다는 여론이 국민들 사이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발등에 불 떨어진 정부는 청와대와 내각 개편 카드를 들고 나왔다. 장관과 청와대 참모 몇 명을 바꾼다고 너무 커져 버린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문책 인사를 통해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하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앞서 국민들이 도대체 왜 거리로 나섰는 지, 그 진실부터 알아야 한다. 또 정부는 국민들이 매를 일찍 든 것으로 여기고 민심을 제대로 읽는 자세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옛 선인은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국민들도 다소는 조급한 면이 없잖다. 한 번 실수는 '兵家之常事(병가지상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큰 신임을 준 정부에게 숨 돌린 시간과 뭐가 잘못 된 것인지 생각할 기회를 줘야 한다. 정부와 국민들이 대립각만 계속 세운다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정부는 민심을 천심으로 여겨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국민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다시 심어야 한다. 이제 국민들의 손에 든 촛불이 분노가 아닌 믿음을 주고, 희망을 밝히는 촛불로 다시 태어나길 갈망한다.

정치부 이종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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