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엄홍길(48). 지구상에 그가 올라야 할 8,000m급 고산(高山)은 더 이상 없다. 그는 인간으로는 처음으로 '신들의 영역' 히말라야 16개좌 정상을 모두 밟았다. 비결은 간단했다. '성공할 때까지 도전한다.' 자연 앞에서 한껏 몸을 낮췄고, 산이 자신을 안아주길 끈질기게 기다렸다. 이제 '인생의 8,000m'를 준비하는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 강북구 수유6동 도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그의 집에서 이뤄졌다. 꽤 한적한 전원주택이다. 그는 좀처럼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말끝을 자주 흐렸고, 먼저 떠난 동료들 얘기를 꺼낼 때는 목이 쉬듯 잦아들었다.
◆산보다 사람이 어렵다
-어린 시절을 도봉산에서 보내셨죠?
"3세 때부터 도봉산에서 살았죠. 고향은 경남 고성인데 부모님이 도봉산 쪽에 이사를 오셨어요. 집이 산골짜기에 있으니까 도시하고 달라서 모든 게 더뎠죠. 산 자체가 놀이터니까. 바위 타고 기어올라가고 나무타고, 열매 따 먹으려고 매달리고. 제가 중2 때부터 암벽 등반을 했어요. 굉장히 재미있고 적성에도 잘 맞더라고요.
-8,000m급 고봉에 오르는 것과 부부싸움 뒤에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는 일 중에 어느 쪽이 더 어렵나요?
"아무래도 인간관계죠. 산이야 저 하기에 달린 거 아녜요? 산은 항상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순응하면 돼요. 안될 때 포기하면 후회가 없어요. 그런데 인간관계나 인간사회에서는 그게 안 되더라고."
-1988년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했습니다. 세번째 시도 만에 거둔 성과였는데요. 정상에 올랐을 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하, 참….(당시 감격이 되살아나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제가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고 더구나 두번째 등반에서 동료 세르파를 잃었잖아요. 그 동료 생각도 나고, 뭐랄까. 올라갈 때는 위만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잖아요. 정상에 올라가니 그때서야 비로소 제가 올라왔던 길이 내려다보이는 거예요. 산을 다시 보는 계기도 됐고. 당시 저는 산에서만큼은 무서운 게 없었거든요. 기술적으로나 체력, 정신적인 부분에서 저는 진짜 자신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두 번의 실패와 좌절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성숙하고 좀 더 노력하는 계기가 됐죠."
-8,000m급의 경우 등반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팀의 규모나 대상지에 따라 달라요. 에베레스트나 K-2를 네팔을 통해 오를 경우에 5명 기준으로 네팔에 지불하는 입산료와 허가 비용만 7만달러예요. 게다가 서너달 동안 먹고 입고 자는 비용, 장비 구입, 수송비, 체재비, 현지 고용인 인건비까지 다하면 최소한 2억~3억원은 들어요. 그 비용을 구하려면 협찬 업체나 스폰서를 구해야 되고. 그게 다 과정이죠."
◆나는 전생에 산이었다
-산에 오를 때 가장 중시하는 게 뭔가요?
"자연을 대할 때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자연을 거스르면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자연이 받아주지 않으면 그 영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항상 욕심을 내지 않도록 신경을 써요. 욕심을 부리면 위험한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되고 시야가 불투명해집니다."
-등반 갈 때 꼭 챙겨가는 물건이 있나요?
"아버지가 생전에 쓰시던 염주하고 가족 사진, 먼저 간 동료들 사진, 어머니가 챙겨주신 부적을 지니고 가죠. 5,000~7,000m급 산들은 인간의 능력으로 등반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8,000m급 이상에서는 인간의 능력이나 의지대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산에 오를 때는 뭔가 에너지가 있어야 하고, 산하고 저하고 하나가 되어야 해요."
-정상에 다가갈수록 힘들잖아요. 숨조차도 쉬기 힘들텐데 그 과정들이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엄청나게 고통스럽죠. 높이 올라갈수록 발걸음이 잰걸음이 돼요. 서너 발자국 떼고 한 10여분 이상씩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그러니까 8,000m에서 400~500m 올라가는 데 평균 10~14시간, 길게는 1박 2일도 걸려요. 다만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올라가죠. 먼저 떠난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이름들을 주문처럼 외워요. '나에게 힘을 달라.'"
◆동료들의 이름을 되뇌인다
-동료가 옆에서 목숨을 잃으면 두려움이 엄청나지 않나요?(엄씨가 그동안 떠나보낸 동료는 등반대원 6명과 세르파 4명 등 10명이다.)
"사고가 나면 참 기가 막히죠. 그런데 그 상황에서는 울고불고할 여유가 없어요. 주변 상황이 최악이기 때문에 어쨌든 빠져나와야 되잖아요. 냉정하게 헤쳐나오고 난 뒤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자책도 많이 하죠. 그런데 모든 사고들은 뭔가 징조가 있어요. 하나같이 사고나기 전에는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해요. 그걸 제가 보면서도 말릴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이게 이상하더라고요."
-동료를 잃으면 돌아와서 유족들 직접 찾아가세요?
"찾아갑니다. 만나면 아무말도 못합니다.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고 그냥 '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그 상황에서 잘잘못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무조건 제가 잘못한 거니까. 소리 지르고 원망하는 분들도 있는데 감내해야죠. 나중에 시간이 지나 마음이 차분해지면 전후 사정에 대해 얘기합니다. 돌아설 때도 굉장히 참담해요. 이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예요. 하아, 세월이…."(먼저 간 동료들이 생각나는 듯 그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은 산도 있나요?
"안나푸르나죠. 다리 부러지고 동료들도 3명이나 잃었고 4번이나 실패했으니. 저한테 가장 많은 실패와 사고, 희생을 안겨주고 눈물을 많이 흘리게 했던, 안나푸르나에서 사고나고 다리 부러졌을 때가 가장 최악이었어요.(엄홍길은 1998년 안나푸르나(8,091m) 정상 도전 중 7,600m 지점에서 세르파 2명을 구하려다 발목이 180° 뒤틀리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을 해도 뛰는 것은 고사하고 걷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제 발목은 지금도 펴지지도, 구부러지지도 않아요. 그래서 경사면을 오를 때 걸음이 약간 뒤뚱거려요. 굳어서 발꿈치를 딛을 수가 없으니까 앞꿈치로만 올라가는 거죠. 그러다보니 산에 오르면 허리가 자꾸 틀어지고 좌골신경통이 심해져요. 말도 못하게 고통스럽죠."(그에 대한 경외심마저 들었다. 실제 그는 계단을 내려갈 때도 난간을 짚을 만큼 불편해보였다. 그러나 그는 수술 후 10개월 뒤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다.)
◆계명대 산악회와의 인연
-계명대 산악회와 인연이 깊죠?(엄홍길이 지난 2004년 에베레스트에서 사고로 생을 마감한 계명대 산악회 박무택 대원의 시신 수습을 위해 '휴먼원정대'를 꾸려 에베레스트를 찾았던 일은 유명하다.)
"1989년 제가 네팔 카트만두에서 '빌라 에베레스트'라는 숙박업을 할 때였어요. 계명대 산악회가 히말출리(7,893m) 등정을 왔다가 원정 단장님이 돌아가셨지요. 그때 어렵게 헬리콥터를 띄워 시신 수습을 하면서 인연이 됐어요. 그렇게 박무택 대원을 만나서 칸첸중가, K-2, 시샤팡마, 에베레스트 등 8,000m급 4개좌를 함께 등반해서 다 성공했어요. 2004년 당시 저는 알룽캉 등반을 갔고, 무택이는 계명대 팀으로 티베트에서 에베레스트 등반을 간 거예요. 국내에서 준비도 함께 하고 네팔까지 같은 비행기로 가고, 거기서 갈라진 게 마지막이었죠. 비보를 듣고 마음은 급한데 여건이 안 됐어요. 2005년에 휴먼원정대를 꾸렸죠. 시신을 찾았는데 현지 상황이 나빠서 결국 8,500m 능선에 현지 안장을 했어요."
-엄 대장님에게 산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산이 나고 내가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은 엄청난 시련과 고통, 사고, 실패, 좌절을 주는데도 저는 산으로 자꾸 향하거든요. 자꾸 산으로 가는 이유는 제가 전생에 산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이제 8,000m급 등정은 지양할 겁니다. 목표와 꿈도 이뤘고. 산이 저를 살려 보내준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줬으니 되갚아야 할 때이고, 그게 '엄홍길 휴먼재단'이죠. 휴먼재단은 산간오지에 학교나 의료·보건시설을 짓고, 등반 중에 세상을 떠난 산악인들의 유가족들을 위해 지원하는 활동을 할겁니다. 청소년들을 산으로 끌어들여서 도전정신과 모험정신을 키워주고, 배려와 이해, 양보심, 희생정신을 깨달을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것이 제가 이제 올라야 할 '인생의 8,000m'입니다."(그는 지난달 28일 '엄홍길 휴먼재단 창립 발기인 총회'를 열고 첫발을 내디뎠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다. 그는 막 청소를 끝낸 식당 안 대신, 먼지가 내려앉은 식당 밖 야외 식탁을 선택했다. "저는 답답한 걸 굉장히 싫어해요. 특히 락스 냄새 같은 세제 냄새도 싫고. 여기 밖이 좋잖아요. 바람도 불고 시원하고."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엄홍길은?=한국 및 아시아 최초 히말라야 8,000m 14좌 등정, 세계 최초 8,000m 16좌 완등. 엄홍길(48)에게는 한국 최초, 아시아 최초,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1985년 에베레스트에 첫 도전한 이후 16년 만에 히말라야 주봉 14좌를 완등했고 세계 최초로 8,000m급 위성봉인 알룽캉(2004년)과 로체사르(2007년)까지 올랐다. 그가 건네는 명함에는 '도전!'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써 있다. 산에 미쳐 돌아다닌 덕분에 마흔을 훌쩍넘은 2002년 한국외대 중국어과에 입학해 2006년 졸업했다. 체육훈장 거상장(1988) 맹호장(1996) 청룡장(2001)을 받았고 상명대 자유전공학부 석좌교수, 트렉스타 기술이사, 파고다 외국어학원 홍보이사, 기상청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 그의 관심사는 '엄홍길 휴먼재단'을 어떻게 키워갈지에 온통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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