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곽재구의 포구기행

입력 2008-06-03 07:06:18

나그네가 찾는 어부의 삶과 꿈

여행은 체험이다. 새로운 자연풍경, 낯선 언어와 풍습, 고색창연한 삶터와 문화재 등을 보고 느끼며 경험치를 높이는 활동이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 그래서 어린이나 청소년시절의 여행은 그 자체가 소중한 추억이며, 미래를 풍요롭게 한다.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기행산문이다. 스쳐지나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나그네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 나그네는 좀 더 여유롭고 사색적인 냄새가 난다. '포구기행'은 우리나라의 작은 포구 마을, 하찮아 보이고 보잘 것 없을 것 같은 그런 포구에서 따개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과 꿈을 시적인 문체로 그려낸 기행문집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포구가 없는 곳이 없으며, 항구와 부두까지 널려있다. 그런데 그깟 포구를 놓고 뭐 그렇게 할말이 많을까 싶었다. 고기잡이 작은 통통배 몇 척과 나룻배 몇 척 뿐인 그곳에 대해. 하지만 작가는 그곳에서 잃어버린 시간의 껍데기를 줍고, 갈매기처럼 끼룩대며 어부들의 소박한 꿈을 들추어냈다.

외로움이 물밀듯이 밀려 올 때 찾은 동해안 맨 끝 구룡포에서 작가는 '외롭다는 것은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라고 얘기한다. 어청도의 한 늙은 어부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노동의 신성함을 생각하게 한다. "노인은 고기를 잡지 않았다. 달빛들이 스러질 무렵이면 노인은 그물을 걷고 자신의 오두막집으로 돌아갔다.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파는 노동은 평온할 수 없다. 하루의 노동이 자신의 하루 생계의 몫을 넘어서고 더더욱 그것이 다른 사람의 몫을 침범하는 경우라면 그 노동은 신성함을 잃는다." 그 어떤 철학가나 사상가보다 깊고 넓다.

또 한 사람의 멋진 얘기가 나온다. 회진장터 한 귀에서 2천원짜리 팥죽을 쑤는 아줌마는 천진한 이야기와 순박한 맛으로 유명하다. 작가는 도무지 이익이라고 남을 것 같지 않은 2천원짜리 팥죽을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에 앉아 배달받아 먹는 얘기를 듣고 부아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인간적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서른 명이 식사를 하고 횟집에서 두 명의 식사비도 안 되는 돈을 건네고…."

작가의 갯벌에 대한 애정과 느낌은 남다르다. 그는 서해안에서 가장 보기 좋은 것이 갯벌이라고 한다. "특히 삶이 난해하고 핍진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코끝이 얼얼해지는 갯내음 속에서 얼마쯤 서성이다 보면 저잣거리에 두고 온 진흙투성이의 세상일들은 문득 지워지기 마련이다."

여행은 자기 성찰의 기회이기도 하다. 제주 바다에서 그는 "꿈이나 그리움이 어디 있는지 아무런 상관도 없이 그저 벌레처럼 돈 모으는 일에만 집착하지는 않았는지요…."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 여행을 하며 작가가 떠올리는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감상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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