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동네 골목길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동네 놀이터에서 삼삼오오 뛰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그러나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알려진 혜진·예슬이 소식을 떠올리면, 저 아이들의 웃음이 언제 참혹한 어둠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검사이기 이전에 두 아이를 둔 아버지의 한 사람으로서 이 아이들의 웃음만큼은 꼭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결코 욕심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시금 '혜진·예슬법'에 대해 생각을 떠올려 본다.
성범죄로 고통 받는 피해 아동과 그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함께하고, 다시는 이런 범죄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제정이 논의되고 있는 '혜진·예슬법'은, 13세 미만의 아이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자에 대해 일정한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자팔찌를 착용시키는 방안과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방안도 논의 중에 있다.
그러나 법률가의 한 사람으로서, 아무리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인권보장이나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법률들이 지나치게 과중한 형을 규정한 것이 아닌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인권보장을 이유로 이러한 법률안에 반대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실 법률을 제정하거나 운용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 양립하기 어려운 의견들이 대립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어느 한쪽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법이 가진 자연스러운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법은 모든 사람들의 사회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법에 대한 느낌을 묻는다면 아마도 하나로 묶기 힘들만큼 큰 차이가 나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인간이 만든 법률을 따르는 것은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할 것이고, 다른 이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라는 것은 법률의 보호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언뜻 모순되어 보이지만 이 두 가지 말은 모두 법의 단면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모두 깊이 되새겨 볼 주제를 담고 있다.
사람이 법을 만든 것은 자유를 제한하기 위함이고, 법을 만들어 자유를 제한한 것은 더 큰 자유를 보장받기 위함이다. '혜진·예슬법'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좀 더 나은 자유를 보장받기 위하여 일정한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자유를 강력히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제는 피의자, 피고인의 인권과 함께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그리고 검찰에서는 이러한 범죄피해자를 돕기 위해 피해자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고, 각종 피해자통지제도, 재판절차진술제도 등을 통해 범죄피해자의 진술권과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법이 가진 두 얼굴 가운데 한 면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법률이 가지는 자유제한적 성격만을 크게 부각하고, 법률에 의해 자유를 제한받고 있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보장이 마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더 이상 성숙한 자세가 아닐 것이다.
지금도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는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치고 있다. 이 아이들이 움츠러들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다.
이동원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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