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3년 DGIST 현주소] (하)위상 재정립 어떻게

입력 2008-04-24 09:01:02

▲ 대구 성서산업단지 대구테크노파크 벤처빌딩에 임시로 입주해
▲ 대구 성서산업단지 대구테크노파크 벤처빌딩에 임시로 입주해 '지능형 자동차' '나노' '반도체' 관련 분야의 연구에 열중하고 있는 DGIST 연구원들. 하지만 DGIST의 정체성과 발전방향, 비전이 명확히 확립되지 못하면서 이들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을 지역민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새롭게 재창조해내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처음 설립을 추진했을 때의 '기본'과 '초심'으로 돌아가 해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DGIST의 현재 위상과 모습은 상당히 혼란스럽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대부분의 국책연구기관들은 각각 기초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에 소속됐지만, DGIST는 KAIST, 광주과기원과 함께 교육과학기술부 직할 기관으로 남았다. 특별법으로 설립된 DGIST의 법적 위상은 다른 국책연구기관에 비해 상당히 높다.

하지만 교육기능을 갖고 있는 KAIST, 광주과기원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반면, 순수 연구기관인 DGIST는 그렇지 못하다. 직원 임금도 제대로 주지 못할 정도의 경쟁력을 가진 DGIST로서는 '실용'과 '효율'을 앞세우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불안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DGIST가 교육기능을 갖게 되면 '생존'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대학들의 반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과제가 남아 있고, 설령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지역발전을 위해 DGIST를 설립한 것이지 DGIST의 존립을 위해 지역사회와 국가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가장 원초적인 질문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DGIST를 설립할 때 성공의 조건으로 중앙정부와 대구시, 경북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지역대학 및 지역기업(대기업 포함)의 적극적 참여와 협력을 내세웠다"면서 "그리고 DGIST는 대구경북지역의 대학, R&D 및 기업 지원기관의 중심 역할을 하는 핵심기관으로 위상을 구상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4년여간의 행적은 이 같은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입지' 논란으로 마음이 떠난 경북지역 지자체와 지역대학들은 물론이고, 파트너십을 훼손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대구시조차 DGIST가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데는 무관심하고 소홀했다. 대구시의 관심은 오로지 DGIST의 건물을 짓고, 테크노폴리스 단지를 조성하는 하드웨어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집중된 것처럼 보였다.

대구테크노폴리스 계획의 '불확실성'과 '비현실성'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자 경북대병원 현풍 이전, 지역대학 캠퍼스 유치,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과 전략소재연구지원센터 설립(MOU 체결) 등을 홍보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구시에서 자랑했던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후속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그나마 소기의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분원 유치. 하지만 ETRI 분원 유치를 자랑하는 것이야말로, 대구시가 얼마나 전략 없이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DGIST가 계명대, 영남대 등과 함께 지능형자동차 분야를 톱브랜드로 연구하고 있는 와중에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내 ETRI 지원센터에 시비 90억원을 투입해 같은 분야 연구용역을 주었기 때문이다.

"시비 90억원이 투입된 ETRI 지원센터에는 대전 본원에서 파견된 연구원이 3명에 불과합니다. 대구시가 지역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ETRI를 위해 일하는 셈입니다. 이런 ETRI가 현풍 대구테크노폴리스에 분원을 세우겠다고 9만9천㎡(3만평)의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근무하겠다는 ETRI 직원은 20여명에 불과합니다."

전문가들은 "ETRI가 진정성이 있다면 최소한 100명 이상의 연구원을 대거 투입해 지역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원을 구상했을 것"이라며 "인수위 시절 기관 존폐의 기로에 섰던 ETRI가 대구를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ETRI 대구분원을 세우려면 대구경북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대규모 분원을 설립해야 하고, 이 계획이 추진될 경우 DGIST는 IT(정보기술) 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R&D 관련 기관의 유치와 협력은 DGIST의 발전방향과 관련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대구시는 한건주의로 생각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역 정치인에게서도 비슷한 사고를 엿볼 수 있다. 로봇산업이 주목을 받게 되자 대구에 관련기관을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다. 로봇관련 분야는 DGIST가 새로운 돌파구로 모색 중인 분야.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검토가 없었다는 방증이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DGIST는 대구시와 경북도, 지역대학, 지역기업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가져야 합니다. 지역 정치권과 관료들은 실적 내기에 급급한 한건주의가 아니라 진정 지역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을 찾아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DGIST 정관에 '…필요할 경우 분원, 부설연구소, 연락사무소 등을 둔다'는 규정이 있다"면서 "이 규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포함해 대구경북지역의 R&D관련 기관과 과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전략적 차원에서 DGIST의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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