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난 지 얼마 됐다고 벌써부터 보궐선거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보궐선거를 꼽으라면 1991년 대구 서갑 보선이겠지요. 서갑 보선은 노태우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으로 비화되면서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서갑 보선은 미국 영화 'OK목장의 결투'(1957년)의 이름에 빗대어 'TK목장의 결투'라고 불렸습니다. 정호용, 문희갑, 백승홍, 김현근 등 출마자 4명 모두 경북고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대구경북을 통칭하는 'TK' 약자는 이때 등장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김영삼 정부 이후 지역 개발 정책에서 대구경북민들이 느낀 차별 및 소외감은 'TK 정서'라는 신조어를 낳았습니다. 모든 말에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TK 정서라는 말에는 30년간 대통령을 배출한 대구경북이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겪는 권력 금단 현상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배어 있습니다. TK는 폐기돼야 할 용어입니다. 지역명을 영문 약자로 표기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거니와 현행표기법 상 대구와 경북은 Taegu(태구), Kyeongbuk(켱북)이 아닙니다. 굳이 약자를 고집한다면 DG가 맞겠지요.
대구경북에 대한 타 지역민들의 부정적 정서는 '고담 대구'라는 해괴한 신조어까지 낳았습니다.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와 지하철 방화 참사 등 대형사고가 있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은 미국영화 '배트맨'의 무대인 가상도시 고담에 비유해 대구를 범죄 도시인 양 비하하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대구의 치안 상황이 결코 다른 도시보다 불안하지 않은데도 고담 대구라는 말이 퍼진 것 역시 반 대구경북 정서가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대구경북에 대한 부정적 정서는 지역민들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치 않습니다. 이른바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한나라당 일변도 지지 표심이 반복된 데 따른 반감이지요.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 역시 한나라당이 석권한 점을 감안하면 이제 대구경북의 정치적 성향을 놓고 타지역민들이 왈가왈부할 처지 역시 아닐 겁니다.
도의와 명분을 중시하는 대구경북이 선거 때마다 보여준 표심은 실리보다 감성 쪽이었습니다. 1996년 총선 때 김영삼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자민련 바람의 진원지가 됐고,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 때의 총선·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은 단 한 석의 여권 후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18대 총선에서도 대구경북 민심은 한나라당 내 친이 계열보다 친박연대·친박무소속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주에는 수성을 선거구에 출마해 낙선한 유시민 의원과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민주당 계열의 정치적 불모지인 대구에서 그는 32.59% 득표율을 올렸습니다. 그가 벌인 정치적 시도는 성공 여부 평가가 엇갈리지만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맹목적인 정치적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용인되는 대구경북을 꿈꿔 봅니다. 그것이 실리가 아닐까요.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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