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것을 말하려 말라…여백 많아도 독자는 안다
고요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퐁당'
일본 정형시 하이쿠(俳句)를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시다. 이 시의 지은이가 마츠오 바쇼(1644∼1694)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하이쿠 시인이며 하이쿠를 문학의 한 장르로 완성시킨 인물이다. 하이쿠라는 용어는 바쇼가 죽고 한참 후에 생겼지만 그는 일본 하이쿠를 완성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아사히신문이 2000년 실시한 '천 년의 일본 문학가 인기투표'에서 바쇼는 6위를 차지했다. 오늘날 하이쿠는 일본을 넘어 미국과 유럽인들도 즐겨 짓는 문학장르가 됐다.
바쇼가 살았던 시대는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금의 도쿄에 '에도 바쿠후'를 세우고 40여년이 흐른 뒤였다. 도쿠가와 바쿠후 3대부터 5대에 이르는 쇼군(장군)들이 통치하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바쿠후 초창기 혼란이 진정되고 도시를 중심으로 시민 계급인 조닌들의 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그럼에도 바쇼는 도시를 멀리하고 변방을 여행하면서 하이쿠 문예를 완성해갔다. 현대 일본인에게 바쇼는 하이쿠 여행으로 평생을 일관한 사람, 속세를 초월한 여행 시인으로 각인돼 있다.
바쇼는 방랑시인이라는 점에서 흔히 우리나라 김삿갓과 비교된다. 그러나 계명대 일본어문학과 유옥희 교수는 "생존시기, 한시에 심취했던 점, 자연에 몰입한 점에서 오히려 윤선도(1587∼1671)에 가깝다"고 말한다. 윤선도가 유교적 토양에서 시를 썼고 바쇼는 불교적 토양에서 썼다는 점은 다르다.
바쇼의 시풍은 미적 추구도 도덕적 교훈도 지적재치도 아니다. 그는 인간본래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볼 뿐이다. 바쇼가 자신의 문하생 기가쿠에게 했던 말은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그대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말하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멀리 있는 것들 속에 반짝이는 시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그대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 속에 있다.'
바쇼는 '소나무에 대해서는 소나무한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서는 대나무한테 배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바쇼의 시는 단순하지만 생의 핵심을 바로 파고든다.
위의 시 '개구리'는 '늦은 봄 한적한 날, 고요한 연못에 개구리 한마리가 뛰어드는 소리가 퐁당 하는가 싶더니 다시 고요해졌다'는 이야기다.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가 아니라 '돌 던지는 소리'였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이기에 이 작품은 생명력을 가진다.
바쇼는 최소한의 상징어와 여백을 강조할 뿐 서술을 극도로 아낀다. 위의 시도 그렇다.
개구리가 공연히 뛰어들었겠는가? 그 고요하고 나른한 봄날, 개구리는 무엇에 놀라 뛰어들었을까? 바쇼는 나른한 봄과 개구리의 역동, 그리고 무심코 개구리 근처로 다가섰을 자신까지 노래하고 있다. 다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바쇼가 탁월한 하이쿠 시인으로 평가받는 것은 하이쿠를 독자적인 문학형태로 발전시킨 공로 때문만은 아니다.
바쇼는 37세 되던 1680년 에도(지금의 도쿄)에서 문하생을 가르치던 일을 접고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41세 때부터 여행을 시작해 51세에 오사카에서 죽을 때까지 방랑생활을 했다. 그는 일본 동북부 지방을 몇달씩 여행하며 방랑일지를 기록하고 2천편에 이르는 하이쿠를 남겼다.
바쇼의 방랑행로는 오늘날 일본의 유명한 관광상품으로 판매될 정도다. 그러나 바쇼가 썼다고 전해지는 '방랑규칙'은 하이쿠 시인의 방랑이 관광상품이 된 요즘의 여행과 달리 고난의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바쇼 작품의 뛰어난 문학성은 고난과 수행의 방랑생활과 더불어 그 다양성에 있다. 그는 자연과 인간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시를 썼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누구를 부르는 걸까/ 저 뻐꾸기는/ 여태 혼자 사는 줄 알았는데.'
'가을이 깊었는데/ 이 애벌레는/ 아직도 나비가 못 되었구나.'
'내 앞에 있는 사람들 / 저마다 저만 안 죽는다는 / 얼굴들일세.'
최근 '바쇼의 하이쿠 기행 1.2.3권(바다 출판사)'이 출간됐다. 바쇼의 10년간 여행기이자 하이쿠 시집이다. 제1권 은 1689년 3∼9월까지 에도를 출발해 동북 변방지역 오쿠에 당도하기까지의 2천400㎞, 제2권 는 1684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걸은 간사이 지방과 나고야를 돌아본 기록이다. 제3권 는 1687년 10월부터 1688년 4월까지 에도·교토 일대의 여정을 담았다. 이외에 '마츠오 바쇼오의 하이쿠(민음사)' '바쇼의 맨드라미(비룡소)' '한줄도 너무 길다(이레)' 등 바쇼 관련 책들이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하이쿠란….
하이쿠(俳句)는 17자로 된 일본의 짧은 정형시로 와카(和歌)와 함께 일본 시가문학의 주요 장르다. 대개 첫째 줄 5자, 둘째 줄 7자, 셋째 줄 5자이다. 전통적 하이쿠는 계절을 상징하는 계어(季語)가 있다. 또 짧은 시를 여운 없이 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레지(切字)를 넣어 끊어줌으로써 영탄이나 여운을 준다. 예컨대 『∼や(∼이여)』 『∼かな(∼로다)』 『∼けり(∼구나)』와 같은 것이다. 하이쿠에서 기레지는 짧은 시의 공간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마츠오 바쇼는….
1644년 지금의 미에 현 우에노 시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9세에 도도번 이가부의 사무라이 대장 신시치로가에 출사했다. 도도가의 상속자였던 요시타다의 총애를 받으며 무사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바쇼가 23세 때 요시타다가 요절함으로써 무사의 길이 막혔다. 이후 고향 이가우에노를 떠났다. 30세부터 37세까지 에도(지금의 도쿄)에서 생활했고, 37세부터 에도의 후카가와에서 은둔 생활했다. 41세 되던 1684년부터 은둔생활을 벗고 여행을 떠났다. 1694년 여행지였던 오사카에서 51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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