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991년으로 되돌아간 남북관계

입력 2008-03-31 09:41:30

새 정부 '북핵 불능화' 정책 불가능…갈등 지속땐 '심각한 결과'

남북관계가 후퇴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0년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합의문이나 2007년의 남북평화번영선언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남북관계를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하여 풀어나가고자 한다. 통일부장관은 북핵문제가 개성공단보다 먼저라고 발언하며 기존의 정경분리의 원칙도 북핵 접근방식도 뒤집었다. 북한은 남북경제협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성공단에서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철수를 요구했다. 남북이 향후 한반도 경제 번영의 중심마당으로 합의했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는 북한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퍼주기'라는 정치적 언어로 폄하되지만 매수전략이라는 국제관계이론에 의하여 그나마 관리되던 한반도 평화가 흔들거린다. 남북관계의 뒷걸음질은 국민들에게 근본적인 불안을 야기한다.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평화로운 일상의 보장 서비스마저도 폐기되는 과정에 있는지 의문스럽다. 경제대통령의 취임 이후 더 실망스러워진 경제 현실로 시름이 깊어진 국민들에게는 새삼스런 걱정거리가 마땅치 않다.

한반도의 안보시계를 21세기에서 20세기로 되돌린 정책은 '비핵·개방·3000구상'이다. 이 구상은 북한이 비핵화 관련 6자회담의 합의를 완전히 이행하면 우리 정부가 북한주민의 1인당 소득을 3천달러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민족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며 동북아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대북정책의 궁극적 목표로서 북핵 불능화는 매우 정당하다. 문제는 목표의 정당성이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적 수단의 불능성이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작동 불가능한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우리 정부가 북한주민의 소득을 3천달러로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대략 38조원의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북한에 '퍼준' 돈은 정부예산 8조원과 민간경제협력비용 9조원이다. 그동안 퍼준 돈의 몇배가 되는 38조원을 북한에 통째로 주는 문제에 국민이 동의하기는 힘들 것이다.

둘째, 정부가 지원의 전제로 삼고 있는 북한 비핵화의 완전 이행 시기는 북한과 일본 그리고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정상화된 시기이다. 이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가 해제되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본격적인 경제지원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또한 북일 간 관계정상화 과정에서 100억달러 이상의 전후보상금이 북측에 유입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경제환경을 기대하고 2012년까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가 이만큼 풀려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지원하겠다고 나서봐야 북한 입장에서는 별로 달가울 것이 없다. 결국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남한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돈만 부어 넣는 결과가 된다.

셋째, 정부는 대북정책이 영혼이 살아있는 실체를 상대로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이는 대북정책의 경험과 현실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념과 강자의 논리에 근거하여 정책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돈을 준다고 체제를 포기하는 상대가 아니다. 도리어 체제의 유지를 위하여 돈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들이 돈과 바꾸려는 것은 상호 간의 불신과 군사적 대립이다. 그런데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이면서 돈을 받고 체제를 포기하라는 것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넷째, 정부는 북한에 대해 일반적 국가 간의 관계처럼 상호주의를 적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을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에 있는 어느 국가와 마찬가지의 '대상일반'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국가들과는 평화를 논의할 실익이 별로 없다. 하지만 위치를 옮기는 것이 불가능한 이웃나라와의 평화는 모든 국가에게 절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전면적 대북상호주의는 한반도의 현실과 교차점을 찾을 수 없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갈등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더 많은 것들이 우연에 의해 좌우된다. 상호 간에 팽팽한 긴장과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소한 사건은 예측하지 못한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철영(대구대학교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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