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는 이야기를 보러가는 것이 아니다

입력 2008-03-29 07:50:36

오페라가 공연되는 한 공연장에서 아는 분을 만났다.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로서 오페라와 예술의 후원으로도 유명하신 분이었다. 아는 분이어서 인사를 드렸다. 그 때 비서로 보이는 한 직원이 프로그램을 사가지고 와서 그 분에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분은 프로그램을 읽지 않으신다. 다 알아서 읽지 않는 것이 아리나, 일부로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줄거리라도 좀 읽어 보시죠"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그 분 왈 "아니, 결말을 미리 알면 공연이 재미가 없잖소!"

오페라는 결말이 궁금해서 다시 말하자면 스토리를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다. 오페라는 '스토리텔링'의 장르가 아니라는 뜻이다. 오페라에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신 많은 분들에게서 "오페라는 이야기가 너무 신파야"내지는 "오페라의 스토리는 뻔해"라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맞는 말이다. 오페라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이 연재에서 이미 얘기했듯이 오페라는 대부분이 연애물이고, 한 여자가 사랑을 하고 이별하고 죽는 이야기가 대종을 이룬다. 그런데 왜 오페라를 보러 가는가?

오페라는 이야기를 보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이야기는 대부분 다 아는 이야기들이다. 즉 오페라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 아는 이야기를 어떻게 곡으로 썼으며 어떻게 노래하고 어떻게 연기하는지를 즐기러 가는 것이 오페라인 것이다.

그래서 오페라의 이야기는 일부러 이미 사람들이 잘 아는 이야기를 택한다. 그리하여 오페라의 소재는 주로 신화, 전설, 문학, 역사 등에서 선택되는 것이다. 우리가 판소리 '춘향전' 공연을 보러 갈 때를 생각해보자. 춘향이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판소리 들으러 가려고 겨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는 부인에게 남편이 "그 이야기 가르쳐 줄까? 뻔하다구. 나중에 남자가 암행어사 되어서 돌아온다고!"라고 말한다고 하여도 그 부인이 판소리에 가지 않는 것은 아닌 것이다. 다 아는 '춘향전'이지만, 이번에 나오는 명창이 어떻게 노래하고 표현하는지 음악이나 연기를 들으러 가는 것이다.

오페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더욱 유리할 수도 있다. 이미 이야기를 알기 때문에 가사 전달이나 스토리텔링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음악적 표현에 더 주력할 수 있는 것이다. 잘 알려진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 같은 이야기는 무려 40여편이나 오페라로 만들어져 있다. 유명한 문학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것도 오페라가 10여편이나 있으며, '베르테르' '햄릿' '오텔로' '예프게니 오네긴' '파우스트' 같은 유명한 문학들은 오페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렇게 오페라는 음악을 듣는 것이다. 대신 줄거리가 단순한 데에 반하여 가사들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오페라의 시어(詩語)들은 대단히 아름다운 운문(韻文)들로서 그 문학적 표현들은 무척 감동적인 것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다 공연 때마다 달라지는 드라마투르기, 연기, 무대 미술, 의상, 분장, 조명, 무용 등을 감상하며, 음악적으로도 오늘은 어떤 가수가 어떻게 노래하는지, 지휘자,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도 모두 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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