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 챙기는 모습에 민심 이반…'정신적 여유' 통해 미래 설계를
지난 두달여 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를 보면 자꾸 공민왕이 생각난다. 나쁜 의미에서든 좋은 의미에서든 그렇다.
1351년 12월, 공민왕은 부푼 꿈을 안고 고려로 귀국했다. 10여년에 걸친 원나라에서의 볼모 생활을 마친 뒤였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지배하에서 친원 권문세족들의 전횡으로 국가가 해체되는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 때문에 백성과 지식인들은 발본적인 개혁을 열망하고 있었다. 공민왕은 약관 22세의 나이. 그러나 그의 총명함과 백성 사랑을 잘 알고 있었던 고려인들은 즉위 소식에 환호했다. 백성들은 오직 공민왕이 임금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고, 그의 귀국 소식을 듣자 기뻐 날뜀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공민왕은 고려의 마지막 꿈이었다. 즉위교서에도 강력한 개혁의 꿈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즉위한지 불과 1년도 못 돼 공민왕은 개혁을 포기해야 하는 총체적 난국에 직면했다. 친원파 권문세족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빌미는 공민왕의 정치에서 비롯됐다.
공민왕의 첫 인사는 측근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원에서의 곤핍한 시절 공민왕을 지켜냈던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볼품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개혁을 학수고대했던 이제현과 이색 등 당대의 고명한 지식인들은 찬물을 뒤집어쓴 느낌을 받았다.
이색은 "아직 한가지 정치가 실행됐다는 것도 듣지 못했고, 공연히 백성의 소망만 서운케 하니, 이렇게 하고서 그 다스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습니까?"라고 격정을 토로했다. 측근들은 결국 자기들끼리 권력투쟁을 벌이고, 불과 9개월 만에 반란까지 일으켰다. 이로써 개혁에 대한 신뢰는 깨지고, 왕의 권위는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우리 국민의 기대도 남달랐다. 조각난 민심을 추스르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추락한 나라의 위신을 세계 속에 우뚝 세우기를 염원했던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 그럴 의지와 능력, 꿈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은 깊은 실망의 나락에 빠져있다.
우리 국민들은 IMF 위기 때 장롱 속의 금을 모았으며, 태안반도의 검은 띠를 걷어내기 위해 달려갔던 사람들이다. 나라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천성이 선하고, 의로운 일에 뜨거운 국민이다. 이런 국민들에게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지나친 처사이다. "대통령 형이 공천 받으면 죽을 일이냐?"는 발언 역시 국민의 심사를 너무 모르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한가지 고언만 드리고 싶다.
꿈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가난한 어촌의 어린이였다. 그런 그가 오직 꿈을 믿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이 꿈이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의 꿈이 되기를 바란 사람이다.
그런데 꿈이란 정신적 여유라는 집에서 산다. 이 대통령은 '월화수목금금금'이다.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라고 한다. 옛말에도 국정은 萬機(만기)라고 했다. 만가지 일이 모여드는 곳이니, 시간이 없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세종대왕은 그 바쁜 와중에도 집현전 학자들과의 경연을 좀처럼 빼먹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가 단순히 책벌레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연은 단순히 학문을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라, 꿈을 꾸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현장의 정치에서 잠시 벗어나, 옛 성현들의 고매한 꿈과 말, 삶을 만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적 세례를 통해 세종대왕은 멀리, 그리고 깊이 나라의 앞날을 내다볼 수 있었다.
중국의 전설적인 성왕 순임금은 옷깃을 가지런히 하고 조용히 앉아서도 세상을 태평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약용은 순임금이 밥 먹을 틈도 없이 부지런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순임금은 부지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정신적 여유도 넉넉했을 것이다. 참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이처럼 근면함을 꿈으로 아우르는 사람이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어려운 게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외롭고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온갖 신산을 이겨내고 이곳까지 왔다. 정치는 이제부터이다.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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