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퇴역 박영하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

입력 2008-03-26 09:38:23

▲ 박영하 제2작전사령부 전 사령관은
▲ 박영하 제2작전사령부 전 사령관은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 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4성 장군까지 오른 바탕이 됐다고 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현역 중 유일하게 월남전 참전 군인으로 남아있던 육군 제2작전사령부 박영하(60) 사령관이 지난 21일 퇴역했다. 그에게 후배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경례를 했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군에서 보낸 박 전 사령관. 되돌아본 세월의 흔적은 너무나 큰 은혜뿐이었다고 했다.

"청도 운문산 자락에서 지지리도 어려웠던 유년시절을 보냈던 소년이 4성 장군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그는 지금까지 '최초'와 '유일'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3사관학교 출신 장교 중 최초의 장군 진급자였고, 첫 대장이자 최초 군사령관이었다. 현역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베트남전 참전용사이기도 했고 퇴역 후에는 고향을 지키는 최초의 4성 장군이란 수식어도 보태게 됐다.

그에게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귀향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가족들과 회의를 거쳐 경기도 용인 집을 내놓고 사령부 인근 만촌동에 집을 얻었다. 대개 근무가 끝나면 모두 서울로 올라가는데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고향인 청도를 오가면서 봉사활동이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받은 은혜를 지역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면서 갚고 싶다는 것이다.

엄격한 규율과 상명하복의 군대. 그러나 그에게선 딱딱함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39년의 군생활, 60년 인생의 한중간에는 바로 '사람'이라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대장으로 임관한 이듬해인 1971년, 그가 서 있었던 곳은 인간이 인간에게 죽임의 총칼을 겨누는 베트남 전쟁터였다. 치열했던 킬러계곡에서 생사를 넘는 극한 상황은 '사람'의 존재감과 소중함을 동시에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15개월 동안 무수히 많은 전우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강인한 정신력은 군 생활의 버팀목이 됐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이라는 것도 알게 했죠."

그래서 그는 덕장(德將)이 되고자 했다. 사단장 시절 육군에서 최초로 '인간 중심 리더십'을 현장에 접목시킨 지휘관이 된 것도 '인간존중'이라는 분명한 소신 덕분이었다.

군대에 인간존중의 풍토를 조성하는 것은 그가 스스로 정한 사명이었다. "죽음을 담보로 임무수행하는 군대에서 어머니와 자식 같은 골육지정으로 상하 간 인격적 결합이 이뤄진다면 어떤 임무도 완수할 수 있는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중심 리더십을 본격적으로 실천한 지난 1년 5개월간의 사령관 시절, 그는 인간의 힘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부하들의 마음이 움직였고, 권위주의는 무너졌다. "겉으로 강한 것은 부러집니다. 하지만 부드러운 것은 쉽게 부러지지 않죠."

부대분위기는 밝아졌고, 단 한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신세대 장병들은 신명으로 능력을 발휘했다. 박 전 사령관은 인간이 중심에 섰을 때 달라지는 것이 군대만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각박해져가는 사회와 조직은 오히려 인간존중 풍토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는 첨단기기가 아니라 바로 사람이지요."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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