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 온통 영어뿐이네."
군복무 후 올해 복학한 대학생 권모(26·영어영문과 3년)씨는 며칠 전 영어전용 과목 수강을 취소했다. 권 씨가 신청한 강의는 전공 선택 과목인 '영어통사론'. 꼭 듣고 싶었던 수업이고 한국인 교수가 진행한다는 얘기에 덜컥 신청했지만 수업 내용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는 "중간·기말고사 부담 때문에 한달도 채 못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정부의 영어 몰입 교육 철회 방침에도 불구하고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 캠퍼스까지 영어열풍으로 뒤숭숭하다. 대학들마다 경쟁력 강화를 외치며 영어전용 강의 및 강좌수를 크게 늘리고 있지만 학생들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교수들은 낭비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지난해 어학연수를 다녀온 대학생 이모(24·여·정치외교학 4년)씨는 올해 영어전용 강의에 도전했지만 수업 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씁쓸하다고 했다. 이씨가 선택한 과목은 교양과목인 '경영의 이해'. 이씨는 "원어민 교수님이 'Making decision'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학생들이 못 알아듣자, 결국 한국말로 '의사결정'이라고 말해줘 그제야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고 혀를 찼다.
한국인 교수의 서툰 영어 강의를 탓하는 목소리도 있다. 1년간 호주 어학연수를 다녀온 조모(23·여)씨는 "교수님의 r, l이나 p, f발음이 구별되지 않는다.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 학생들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면서 뜻을 물어보는데, 단어를 써 주면 피식 웃는다"며 황당해했다. 조씨가 신청한 과목은 70명이던 정원이 1개월 만에 20명 남짓으로 줄 정도로 부실한 내용에 실망한 학생들이 많다.
복학생 조모(27)씨는 "영어전용 강의는 수업 난이도 때문에 절대평가로 이뤄지기 때문에 학점을 잘 받으려는 학생들이 몰린다"며 정작 수업 내용에는 별 흥미를 갖지 못한다고 했다.
교수들의 불만도 높다. 한 대학 교수는 "영어강의 비율을 높이라는 대학본부의 닦달 때문에 젊은 교수들의 강의 부담만 늘어나고 있다. 한 교수는 "30분이면 충분할 내용을 1시간 이상 천천히, 쉽게 진행해야 하고 수업 말미에는 다시 10분 정도 한국말로 수업 내용을 정리해줘야 한다"고 했다. 경북대는 이번 학기에 344개의 영어전용 강의 및 영어강좌를 개설했고 영남대 63개, 계명대 250개 등 지난해에 비해 50~100% 정도 늘렸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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