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농어촌] (하)닻 내린 어촌 현장르포

입력 2008-03-21 09:49:38

▲ 면세유가 급등으로 출어를 포기한 채 정박 중인 구룡포항 오징어채낚기 어선들.
▲ 면세유가 급등으로 출어를 포기한 채 정박 중인 구룡포항 오징어채낚기 어선들.

경북 동해안 최대 어항인 포항 구룡포항. 조업을 포기한 채 닻을 내린 오징어채낚기 어선들이 즐비했다. 근해채낚기협회와 구룡포선주협회에는 오징어잡이 선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치솟는 면세유가와 줄어드는 어획고를 걱정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선주협회장이자 90t짜리 오징어채낚기선을 가진 정춘길씨는 "배를 놀릴 수 없어 조업에 나섰지만 결국 4천여만원이라는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고 하소연했다. 면세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동해안의 대부분 어선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있다.

현재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해 면세유 가격도 덩달아 올라 지난해 3월 200ℓ 1드럼당 8만7천960원에서 지금은 13만20원으로 두배 가까이 올랐다. 출어 경비의 70%를 차지하는 면세유 가격이 이처럼 치솟으면서 출어가 곧 손해로 이어지자 출어 자체를 포기하고 있는 것.

실제로 90여척의 오징어채낚기 어선 가운데 출어에 나서는 어선은 하루 10여척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선주들은 "기록적인 면세유가 급등으로 인해 채산성이 악화되는데다 출어를 해도 고기가 잡히지 않는데 누가 겁없이 출어를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구룡포수협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오징어 어획량은 8천886t이었으나 지난해는 6천765t으로 24% 줄어들었으며 위판액도 190억6천여만원에서 140억여원으로 26%나 감소했다.

구룡포수협 한두봉 상임이사는 "5년 전부터 어획고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면세유가는 해마다 오르고 있어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조만간 도산하는 선주들이 속출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선주들은 거의 연대보증 형태로 얽혀 있어 한 사람이 도산하면 줄도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32t짜리 오징어채낚기 어선을 갖고 있는 김석암씨는 "현 상황에서는 감척만이 해결책"이라면서 "정부가 나서서 감척 예산을 확대하고 감척 조건을 완화해야 어민들이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울진·영덕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면세유가 인상은 결국 출어 경비 가중으로 이어지면서 출어 포기를 불러와 어업기반 자체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실제로 울진 죽변·후포항과 영덕 강구·축산항 등지의 1천400여척 어선 중 70~80%가 면세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출어를 포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울진 죽변의 창은호 박근태(53) 선장은 "고기가 안 잡히면 값이라도 올라야 하는데, 현상유지는 커녕 손해만 돌아오는 조업을 누가 하겠느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죽변수협 이영성 상임이사는 "면세유가 상승과 어가 하락에다 장기적인 어획부진이 맞물려 어업기반 자체의 붕괴 우려를 낳고 있는 만큼, 단기적으론 면세유가 재조정과 어촌정착기금 지원, 장기적으로는 우량종묘의 생산기술개발과 연안어장 방류 등 기르는 어업에 대한 비중을 높이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울릉도 어촌도 총체적인 난국을 맞고 있다. 섬 지역 어업인들은 "올해 들어 면세유 고공행진과 함께 어자원까지 고갈됐다"며 "대분의 어민들이 조업을 포기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지난 2003년 드럼당 6만219원 하던 면세유가 5년 만에 13만원을 상회하면서 어민 1인당 유류비 부담 비율이 두배 이상 늘어나면서 오징어잡이 어민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공사장을 찾아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정석균(49·울릉읍 저동리)씨는 "고기는 안 잡히는데 출어경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도저히 선박을 유지할 수가 없다" 며 "연안어선 감척을 확대해 달라"고 했다. 강영길 도동어촌계장도 "출어경비 상승이 선주들의 도산으로 이어지면서 보증인 등 피해 어민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어선구조 조정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영국·이상원·황이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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