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프리카는 '이렇게' 사라졌다

입력 2008-03-12 07:01:16

모든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치누아 아체베 지음/조규형 옮김/민음사 펴냄

아프리카의 모든 것이 '어떻게 사라져 갔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독자의 주목을 끌 만한 사건 없이 다양한 장면과 사건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형식이어서 다소 지루하다. 그럼에도 읽을 만하다. 낯설고 궁금한 아프리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가 치누아 아체베는 이 소설을 영어로 썼다. 외부인과 소통을 원했던 것이다. 더불어 아체베 자신이 속한 이보족 용어를 날것 그대로 쓰고 있다. 아프리카를 있는 그대로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 말미에 '이보 용어'를 따로 설명하고 있다.

이 소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 스러지는 한 부족(혹은 아프리카)의 이야기이자 문명충돌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의 배경은 영국이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온 무렵이다. 그러나 작가는 침입자 백인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우리의 세계는 왜 이토록 무력하게 무너졌는가?' 질문하고 있다. 그 질문은 꼭 백인을 향한 것만은 아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모든 비주류 세계의 독자들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아체베의 소설에서 백인들이 총칼이 아니라 '교회'를 먼저 세웠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교회는 약하고 버림받은 자들, 명예롭지 못한 자들, 경멸의 대상인 자들, 병자들을 받아들이며 세력을 키워갔다. 백인들이 세력을 키워갈 때까지 '아프리카의 주류(오콩코처럼 명예로운 남자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는커녕 비웃었다. 그래서 힘을 합치지 못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을 때는 늦었다. 물론 작가는 백인과 기독교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기독교도인 에노치가 마을의 전통 종교의식을 모멸하는 장면은 '누가 먼저 싸움을 시작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소설은 '문명충돌 보고서'이며 '인류학 보고서'이다. 더불어 '전통 아프리카 사회의 붕괴와 사람의 죽음'까지도 자신이 쓸 책의 자료 정도로 생각하는 백인과 백인 문명에 대한 비판서이기도 하다.

'오콩코의 주검을 처리한 치안판사는 재판소로 걸어가면서 책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이 그에겐 새로운 자료였다. 전령을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는 읽을거리일 것이다. 그에 대해 거의 한장(章)은 쓸 수 있을 것이다. (한장이 어렵다면) 몇개 문단은 가능할 것이다. -244쪽-' 흔히 오지나 야만의 땅을 방문하고 돌아왔다는 여행자의 득의에 찬 기록은 이처럼 몰 인간적인 기록은 아닐까. 267쪽, 8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낯선 이야기가 주는 흥미(톱 기사내 박스)

소설은 전체적으로 다소 지루하다. 그러나 중간중간 인내심 부족한 독자를 붙잡아두는 독특한 아프리카 이야기가 등장한다.

▷'왕의 입을 보면, 한때 (그가) 어머니의 젖을 빨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이제 막 명예로운 남자가 된 오콩코에게 동네 노인이 들려주는 말. 못난 아버지를 만나 궁핍하고 불운했지만 성공한 남자에 대한 칭찬.

▷에퀘피는 아이를 열이나 낳았지만 아홉이 세살도 못돼 죽었다. 여자는 절망과 소망을 아이들 이름에 투영해 지었다. '죽음이여, 그대에게 애원합니다.' 죽음은 이를 무시했다. 다음 아이에게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죽음은 들어주지 않았다. 다음 아이의 이름은 반항적인 의미를 담아 '죽음이 좋을 대로 하시겠지'라고 지었다. 죽음은 그렇게 했다. 당시 아프리카의 유아 사망률에 대한 이야기이며 기도밖에 달리 도리 없는 여성의 고달픔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남자의 일생은 자신의 조상에 점점 가까이 가는 일련의 통과의례였다'-아프리카 사람들(특히 이보족)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부족은 도마뱀과 같다. 꼬리를 잃으면 곧 다른 꼬리가 자란다'-오콩코가 실수로 마을 아이를 죽여 7년 동안 타향살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위치는 이전과 달랐다. 부와 명예를 가졌던 그가 떠나자 새로운 세력자가 금방 나타났음을 자연에 빗대 설명하는 말. 오콩코가 귀향했을 때 많은 것이 변해 있었고, 그의 귀향은 눈에 띄지 않았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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