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에리히 프롬/차경아 옮김/까치 펴냄
캠퍼스에 08학번들이 등장했다. 중학교나 갓 졸업했을까 싶은 뽀얀 얼굴의 신입생들이 떼지어 교정을 누비며, 도대체 알아듣지 못할 구호로 고함치고 술도 퍼마시고 하는 걸 보자니 문득 내가 대학 초년생이었던 시절의 풍경이 떠오른다. 90년대의 대학가는 지금보다 훨씬 관대하고 순진했다. 상대평가가 없던 시절, 교수들은 완벽한 정답지를 작성한 학생과, 정직한 가슴으로 설익은 리포트를 제출한 학생에게 똑같이 A학점을 줄 수 있었다. 토익 900점을 받는 형보다 사회복지학대학원에 다니는 형이 더 지적으로 보였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하얀 오빠보다 농활을 진두지휘한 검붉은 오빠가 더 섹시해 보였다. 영문과 복수전공과 교직이수가 대학생들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지 않았던 그때, 불문과 학생들이나 노문과 학생들은 영문과 학생들과 비슷한 정원, 똑같은 자긍심을 가지고 공부했었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 대학생들에게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나'20/80 법칙'같은 부류의 소위 '앰비셔스'한 책들보다는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이나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같은 부귀영화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책들이 더 널리 읽히고 사랑받았다. 춘삼월 빛 고인 따뜻한 인문대 옥상에서, 새내기였던 나는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소유냐 존재냐'의 독서를 즐겼던 기억이 있다. 프롬이 스피노자의 입을 빌려 '돈과 재산을 밝히는 사람은 실상 정신이상자'라고 주장할 때,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기에 그리스도와 석가는 진정한 영웅'이라고 가르칠 때, '많이 소유한 사람은 그 소유의 유지를 위해 사랑, 자유, 성장, 변화를 한평생 두려워할 것'이라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고 또, 새겼다.
프롬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소유'하려는 즉, 타도하고 생존하려 애쓰는 본능과, '존재'하려는 즉, 나눠주고 희생하려는 본능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속한 사회의 관습이나 경향이 두 본능 중 한쪽의 우세를 결정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소유'가 콜드게임으로 승리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중형차와 67만원짜리 영어유치원과 공상과학 핸드폰을 누려도 '살기가 너무 어려워서' 더 많은 소유를 가져다 줄 영웅을 갈망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아예 예수도 부자였다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는 분까지 등장했다. 당신이 가구 사업과 치유 사역으로 상당한 부를 쌓았을 것이라는 고명한 추측인데, 세상이 하수상하다 보니 이런 궤변도 그다지 놀랍지가 않다. 이런 시절에 '소유냐 존재냐'같은 책을 권하는 것은 그래서 상당히 머쓱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꿈 많은 새내기들에게 한번쯤은 물어보고 싶다. "너희들, 소유냐? 존재냐?" 나는 바보같이 아직도 에리히 프롬을 믿는다.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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