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관의 시와 함께] 짜증論/이희중

입력 2008-03-11 07:00:00

모름지기 짜증은 아무한테나 내는 것이 아니다 짜증은 아주 만만한 사람한테나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짜증을 받아줄 마지막 사람은 제 엄마다 짜증이 심한 사람은 엄마 말고 식구들한테도 짜증을 낸다 필시 이 사람은 식구들을 아주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달리 보면 가족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더 심한 사람은 식구 아닌 남들한테도 짜증을 낸다 이 사람은 아주 힘 있는 놈이 아니면 망나니임에 틀림없다 짜증낼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자신한테 짜증을 낸다 이 사람은 자신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니면 이 사람은 자신 말고는 아무도 안 믿는 사람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동물 중 하나가 펭귄이다. 자신을 보호할 마땅한 무기가 없는 펭귄은 극지에서 견디는 힘으로 제 방어무기로 삼는다. 강추위를 견디기 위해 펭귄들은 절대적으로 남의 힘을 빌려야 한다(세상에 만만한 게 없으니 "자신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상대의 깃털을 융단 담요처럼 다듬어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동물이 고슴도치다. 철사뭉치 같은 털을 곧추세우면 아무리 맹수라도 쉽사리 삼킬 수 없다(그래도 사랑을 할 때는 털을 가지런히 눕힌다고 한다). 힘이 강한 만큼 고슴도치는 남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하다. 자존심이 강한 동물은 외롭다. 제 새끼도 제 맘대로 안을 수 없을 정도로 외롭게 살아야 한다.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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