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姓 스트레스

입력 2008-03-10 11:36:52

이혼과 재혼이 별달리 특별한 일이 아닌 시절이 됐다. 예전처럼 이혼을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재혼에 대해 민망해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좋은 부부 사이도 살다 보면 이혼할 수도 있고, 재혼, 삼혼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자연스레 여기는 추세다. 우스개 같지만 실제로 '내 아이, 당신 아이, 우리 아이'가 한 집에서 사는 가정도 적지 않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자녀의 성을 바꾸려는 사례가 봇물 터지듯 늘고 있다. 주로 재혼가정 자녀들이 繼父(계부)와 성이 달라 고통당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도입된 '자녀 姓本(성본) 변경제도' 시행에서 비롯된다. 지난달 25일 현재 전국 법원에 접수된 성본변경 신청건만도 모두 8천169건에 이를 정도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의 자녀 성 변경 신청 사례가 잇따르면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재혼한 개그우먼 김미화씨의 경우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두딸의 성을 현재 남편의 성으로 변경해줄 것을 신청, 법원 허가를 받아냈다. 이로써 김씨의 두딸과 지금 남편의 두딸 모두 같은 성의 자매가 된 것. 김씨는 10대인 두딸의 뜻을 물어 변경신청을 했다면서 "이제 나만의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가 돼 기분 좋다"고 말했다. 이혼 후 남매를 키우고 있는 탤런트 최진실도 최근 두자녀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바꿔 달라고 신청, 현재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어서 관심을 끈다.

성본 변경 신청건은 최씨의 경우처럼 어머니의 성으로 바꾸려는 예도 드물게 있지만 대개는 재혼가정에서 현재 家長(가장)의 성으로 바꾸려는 케이스다. 어느 경우든 전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하므로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이유에서 자녀의 행복권을 위해 성을 바꾼 사례도 있다. 울산의 한 40대 가장은 자녀가 성에서 연상되는 별명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아이들의 성을 아내의 성으로 바꿔달라고 신청, 허가를 받았다. 특정 성 때문에 놀림을 당한다는 이유로 법원이 성 변경을 허가한 첫 사례이자 아버지가 스스로 자녀의 성본을 아내의 것으로 바꾸어준 매우 드문 케이스다.

가족 구성 형태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해지는 추세다. '성본 변경'이라는 통로가 있기는 하나 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만큼 높아지는 사회가 됐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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