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로그램 진행 코미디언 1호 김미화

입력 2008-03-08 07:52:10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고요? 그거 제가 낸 소문인데…하하"

코미디언 김미화(45). '순악질 여사'로 사람들에게 각인된 지 어느덧 22년 세월이다. 하지만 김미화를 '일자눈썹에 야구방망이' 캐릭터로 단정짓기에는 그 인생이 파란만장하다. 첫 공개형 코미디인 '개그콘서트'를 기획해냈고, 코미디언으로는 처음으로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자리 잡았다. 70여곳에 이르는 홍보대사 활동과 봉사·기부로 '본받을 만한 선행 연예인'에도 꼽히지만 가정폭력과 이혼, 그리고 재혼이라는 드라마틱한 가정사를 겪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변신을 거듭한 것일까.

인터뷰는 서울 여의도 MBC 7층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화면발'보다 '실물'이 낫다는 게 첫인상. 복도 구석에 자리를 트고 앉은 그녀는 또렷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 사람 꽤 명쾌하다'는 게 두번째 인상이었다.

-이제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라는 소개가 더 익숙합니다.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는 얘기도 있는데요.

"그거 제가 낸 소문이에요. 하하. 삶의 자세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하겠다고 한 일은 꼭 실천하는 오프라 윈프리의 생활자세나 태도 이런 게 본받을 만하다고 봐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어떤 면이 청취자나 시청자에게 다가간다고 봅니까.

"사실 너무 어려운 용어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뭐예요'하고 물어봐요. 예를 들어 애그플레이션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게 뭐 달걀인가' 생각할 때쯤 제가 물어보는 거죠. 그러니까 청취자들이 '우리 눈높이에 맞구나!'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코미디 쪽 활동을 거의 안 하시던데요.

"안 불러주니깐요. 흐흐. 사실 제가 개그콘서트를 기획했던 당시만 해도 젊은층을 위한 코미디가 너무 없었고 '이러다가 우리 코미디산업이 전반적으로 붕괴되는 거 아니냐'라는 위기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후배들을 주축으로 연극 형태의 관객 위주 코미디를 해보자고 기획한 거죠. 지금도 시켜주면 내가 아이디어 짜서 재미있게 할 자신이 있어요.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까."

-시사 프로그램과 코미디, 두 분야가 가진 매력이 뭔가요.

"코미디는 저의 뿌리예요. 무대에 오르면 미치는 것 같아요. 어떤 영적 표현이라고 해야 될까. 시사 프로그램은 사실 조금은 딱딱하고 지겨울 것 같지만 사실 매일 얘기가 새로워요. 재료가 만날만날. 그래서 점점 빠져들게 돼요."

-왜 갑자기 시사 프로그램으로 방향을 돌렸죠? 당시 개그콘서트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는데.

"MBC 정찬형 PD가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달라고 제안하더군요. 처음엔 거절했어요. 정 PD는 따뜻한 뉴스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냐고 하더군요. 듣고 보니까 그렇기도 하더라고요. 하기로 마음먹고 3개월 동안 시사 프로그램도 듣고 훈련을 했어요. 난 비전문가이까 그냥 솔직한 시사 프로그램을 해보자 그랬던 거죠.

-2004년 이혼 당시 가정폭력이 원인으로 꼽혀 파장이 일었는데요. 지난해 1월 재혼하기까지 아픔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삶의 자세가 긍정적이에요. 나쁜 일은 빨리 잊어버려요. 미련스럽게 힘들어도 참고 견디고 살긴 했는데…. 미련 없이 긍정적으로 살다 보니 좋은 사람을 만났네요. 지난 1월 5일이 결혼 1주년인데 많이 울었어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서. 둘 다 아픔을 겪었고. 서로 고백하기를 '살아온 평생 동안 지난 1년이 가장 행복했다. 앞으로 올 1년은 지난 1년보다 더 행복하게 살자'고 얘기를 했어요."

-서울시, 유니세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녹색연합 등 수많은 곳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하시더군요. 왜 그렇게 많이 하나요.

"70~80개 되죠. 무지하게 많아요. 그만 좀 했으면 좋겠는데 해달라고 연락이 오면 사정을 말씀드려도 막무가내더라고요. 제가 이름만 걸어놓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도와달라고 하면 시간이 되는대로 가서 해드려요. 매달 네댓군데씩. 어쩔 땐 미치겠어요.

-거절을 잘 못 하시나봐요.

"그런 경향도 있고요. 제가 살아보니까 나쁜 마음으로 하는 분들은 오래 못 가더라고요. 자연스레 정리가 돼요. 어찌 됐든 그런 단체를 만들어서 1, 2년 봉사를 해도 혜택을 못 받는 어려운 분이 있잖아요. 그래도 행동하는 양심이 낫지 않나. 망설이는 것보다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시는 걸로도 유명합니다만.

"코 꿰여서요. 흐흐. 한번 인연을 맺으면 인연의 줄이 안 끊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혼자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가기가 참 쑥스럽더라고요. 그러다 1990년대 초에 KBS '100세 퀴즈쇼'에서 '사랑의 삼각끈'이라는 특집을 했어요. 홀몸노인하고 혼자 있는 아이들, 후원자 세명을 엮어서 가족을 만들어주는 건데 그때 할머니 한분하고 사내아이 두명하고 인연이 됐어요. 몇년이 흘러 당시 연결된 100쌍인가 중에서 누가 계속하나 조사를 해봤더니 저밖에 없더라고요. 그때 알게된 게 '꾸준한 게 중요하구나'였어요."

-사회 문제에 다양하게 참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주로 어떤 문제에 관심이 많은가요.

"여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관심이 많아요. 여자들이 아이 키우며 살림하면서 돈 버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더 열악한 환경에 내몰리거든요. 전쟁 문제. 제가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어요. 1인 시위도 하고.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유니세프 활동을 갔는데 오랜 내전으로 어린아이들이 다리가 잘리고 문둥병에 걸려서 돌아다니고 하는 걸 봤어요. 상황이…, 어휴! 잘사는 나라의 전쟁놀음에 왜 우리 젊은이들이 가야하나. 이 나라 젊은이들을 생각한다면 더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김미화는 참여연대, 녹색연합, 여성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50여곳에 참여하고 있다. 2003년 촛불시위 당시에는 129명의 연예인 지지성명을 받아 집회를 열기도 했다. 호주제 폐지 운동에 앞장섰을 때는 자신이 생부의 성이 아니라 사실혼 관계에 있던 생모의 성을 땄음을 고백해 반향을 일으켰다.)

-행복하신가요?

"그럼요. 저는 사실 꿈대로 이루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정말 더 바라는게 없어요. 그래서 요새 살이 좀 쪘어요. 너무 느슨해져서. 저는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재산을 얼마를 모을지 모르겠지만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요. 전 재산을 기부한 할머니들을 만나보는데 얼마나 기운이 좋으신지 소리가 쩌렁쩌렁해요. 그건 자신감이거든요. 그분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고싶다, 그런 생각이 들죠. 방송도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김미화는?=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3년 KBS개그콘테스트 은상 수상으로 데뷔했고, 1986년 KBS 2TV '쇼 비디오자키'에서 방송된 '쓰리랑부부' 코너에서 일자눈썹을 하고 남편을 휘어잡는 '순악질여사'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999년 9월 공개형 코미디 KBS '개그콘서트'를 기획, 코미디의 물줄기를 돌렸다. 2003년부터 MBC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을 맡으면서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변신, SBS '김미화의 U', KBS 'TV 책을 말하다' 등을 진행하는 등 교양프로그램 전문 MC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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