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를 보낸다는 짠한 마음으로 조금은 감상에 젖을 수도 있는 요즈음. 가난한 젊은이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더욱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가난한 이들의 사랑이 특별히 순수하다거나 감동적이라고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인해 메마른 시대에 잠시나마 눈시울을 적시는 것일 게다.
지난 21, 22일 이틀에 걸쳐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라보엠(La Boheme) 공연이 있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인데다 매년 이맘때면 여러 곳에서 나름대로의 공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을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오페라전문가가 아닌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의 음악성과 수준을 가진 공연이었는지도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구오페라하우스가 '2007 크리스마스 오페라'로 기획한 공연으로서 상당한 고심과 노력이 엿보이는 공연이었다고 느껴지는데다, 근래에 지역에서 보았던 다른 오페라나 뮤지컬 공연과 비교해 여러 가지로 돋보이는 점이 있었기에 아마추어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그야말로 본대로 느낀 대로 감상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더블캐스팅으로 이루어진 이틀간의 공연에서 첫째 날과 둘째 날의 배역이 완전히 다르게 구성되었기 때문에 이 감상은 첫날 공연에 대한 것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전체적으로 스탭들을 포함해 출연진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과 다른 지역 또는 외국에서 활동 중인 음악가들이 두루 기용되었다. 음악적 완성도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활동무대가 서로 다름에도 출연자들의 호흡과 짜임새는 괜찮아 보였다.
예를 들어, 1막 마지막 부분에서 미미와 로돌포가 나가면서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은 상당한 여운을 남겼다. 연기도 비교적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특히 미미역(소프라노 김정아)의 감정표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작품에서 약간은 수줍고 촌스러운 듯한(?) 모습은 오히려 극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듯했으며, 3막의 로돌포와의 갈등 부분이나 마지막 장에서 침대에 누워 죽음에 이르는 장면도 잘 소화했다. 좀 더 드라마틱한 연기를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캐릭터의 특성상 오히려 수수한 연기가 느낌을 더한 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 또 하나 돋보인 것은 무대장치이다. 파리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상당한 예산과 물량을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석조로 이루어진 파리 주택가는 조명효과와 더불어 그럴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파리 분위기를 너무 밝고 장중하게 표현한 것은 실제 원작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19C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던 뒷골목은 훨씬 더 지저분하고 우중충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의상디자인도 다양성을 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렇지만 로돌포 등 주요 출연자들의 의상은 상당히 현대적이고 패셔너블하여 19C 파리 뒷골목의 가난이 뚝뚝 떨어지는 젊은 예술가들의 이미지를 실감나게 보여주지 못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음악적 완성도와 전체적인 조화는 전문적인 영역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대체로 연주의 톤이 오페라의 분위기를 맞추지 못하는 듯한 감이 들었다. 무식한(?)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나, 극의 분위기상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챔버오케스트라나 실내악단을 이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미미의 죽음과 로돌포의 울부짖음 속에 막이 내리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데 그 여운을 음미한다는 점에서 막이 내리고도 몇 분 정도 음악이 계속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막이 내리자마자 오케스트라도 멈추어 버려 좀 썰렁한 감이 들었다.
여운의 음미에 대한 배려와 관련해 항상 아쉽게 생각하는 점이 오페라하우스 부대시설과 주변 환경이다. 좋은 공연시설은 단지 첨단의 무대시설과 넓은 객석만으로는 부족하다. 음악이 흐르는 편안한 커피숍도 필요하고, 주변에는 공원이나 다른 문화 공간 등이 어우러져야 한다.
진짜 관객들은 이러한 공간을 통해 좋은 공연으로부터 받은 감동의 여운을 천천히 재음미하는 기쁨을 얻기 원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부대시설이나 주변 분위기는 거의 낙제점이다. 제대로 된 부대시설도 없고 오페라하우스 옆의 수천 평 넓은 부지는 썰렁하게 비어 있다. 주변은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여 있고 곱창집·세탁소·슈퍼마켓 등의 살풍경이 전개된다.
몇 가지 마음에 차지 않는 점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공연은 괜찮았다고 생각된다. 우선 많은 준비와 출연진의 호연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고 객석 점유율도 높았다. 오페라 공연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함께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 보였다. 대구 오페라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성공의 가능성을 보여준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상용(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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