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나딘 고디머 엮음/이소영·정혜연 옮김/민음사 펴냄
유명 가수들이 모여 자선공연을 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199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나딘 고디머는 작가들도 이 세상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자신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작가 스무 명에게 편지를 보냈다. 취지를 설명하고 각자의 문학 세계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하나씩 골라 달라고 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편지를 받은 작가들은 모두 이에 화합했다.
평생 집필한 작품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대표작을 손수 골라 원고료나 저작권료 없이 보내 주었으며, 각 나라의 출판사들 역시 이익 없이 출판하는데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를 기부해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세계 최초의 자선 작품집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Telling Tales)가 탄생했다.
초판 출간 때 당시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이 기념 연설을 할 만큼 주목을 받았으며, 수익금은 모두 남아프리카 공화국 에이즈 구호단체인 TAC(Treatment Action Campaign)에 기부됐다.
한국어판이 이번에 출간됐다.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에는 나딘 고디머를 비롯해 가브리엘 마르케스, 주제 사라마구, 권터 그라스, 오에 겐자부로 등 노벨 문학상 수상자 다섯 명과 함께 살만 루슈디, 수전 손택, 치누아 아체베, 미셀 투르니에 등 이름만으로도 현대 문학의 역사라고 할 만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모두 담겨 있다. 또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후보 1순위로 지목됐던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와 최근 영미 단편문학에서 주목받는 폴 서룩스 등 우리나라에 아직 번역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도 실려 있다. 또 재기발랄한 영원한 뉴요커 우디 앨런도 가세했다.
나딘 고디머가 작가들에게 작품을 요청할 때 내건 조건은 에이즈와 관련이 없어야 할 것과 자신들의 문학세계를 잘 드러낸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피할 수 없는 영원한 문학적 주제 '죽음',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나같이 꼽았다.
'사랑보다 위대한 죽음'에서 마르케스는 죽음을 앞두고도 사랑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를 통해 인간의 아이러니와 무상함을 그렸고, 존 업다이크는 '죽음을 향한 여정'에서 친구의 죽음을 바라보는 중년 남성의 시각을 통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또 클라우디오 마그리스는 '과거의 영광'에서 자살한 기타리스트를 추모하며 유럽의 과거를 추모하며, 오에 겐자부로는 '이 땅에 버려진 아이들'에서 삶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동양적 사상을 수묵화처럼 그려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인 만큼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독특하다. 살만 루슈디는 '불새'에서 사랑을 믿고 인도 남자를 따라간 미국인 여자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적 대립과 성차별을 우화적으로 보여주고, 주제 사라마구는 '켄타우로스'에서 반인 반마(半人 半馬)의 비극적 삶을 통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파멸하고 마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이 책에 담긴 21편의 단편은 작가들이 직접 고른 대표작이다. 따라서 단순한 이벤트성 선집이 아닌 현대문학의 정수를 모은 기념집이라고 할 만하다. 독창적이고 탁월한 작가들의 작품을 즐기는 문학적 향유뿐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와 대륙 사이에서도 흐르고, 또 흘러야 하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다. 나딘 고디머의 요청에 의해 이 책의 수익금은 모두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 기부된다. 408쪽. 1만 2천 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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