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중국 국보전'] 중국 국보전 관람방법

입력 2007-12-12 07:14:48

중국 국보전에 출품된 유물들은 고대 동아시아 문물교류를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로마의 유리잔과 페르시아의 은제 그릇은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 중국의 문화교류 양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남북조시대부터 수·당대에 걸친 중국의 문화에는 농경민족인 한족의 고유문화만이 아니라 서역과 북방의 유목문화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남북조시대 말기부터 수나라에 걸쳐 중국에서 벼슬한 우홍이란 인물의 관을 감싼 백옥제 덧널에는 깊은 눈, 높은 코의 서양인들이 잔뜩 묘사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우홍 자신이 소그드인이기 때문이다. 소그드인은 현재의 이란 일대를 무대로 동서 교역을 담당하였던 종족으로서 당나라의 쇠퇴를 불러온 반란사건의 주인공인 안록산과 사사명 모두 소그드인이다.

이렇듯 남북조에서 수·당 시대에 걸쳐 중국에는 많은 수의 서역인들이 활동하였고 당시 문화는 국제적인 양상을 띠었다. 경주의 신라 왕릉에서 로마 유리나 페르시아 은잔 등 서역 물품이 많이 출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고난 장사꾼들인 소그드인들은 경주까지 온 것 같다. 통일신라 고분인 용강동 고분에서 출토된 흙 인형 중에는 무성한 턱수염의 서역 사람을 표현한 것이 있으며, 원성왕릉과 흥덕왕릉 앞에는 곱슬거리는 머리와 턱수염의 우락부락한 인물이 돌로 표현되어 있다.

한편, 양자강 남쪽의 남조국가에서는 도자기 문화를 발달시켰다. 청자로 유명한 월주요, 검은 색 흑자로 유명한 덕청요가 모두 이때 번성하던 가마이다. 이번에 출품된 자기류는 남조의 도자문화를 대표하는 것들로서 매우 귀한 작품들이다. 이와 유사한 유물 100여 점이 당시 백제의 도성이었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그리고 지방 우두머리의 무덤에서 자주 발견됐다. 백제가 남조 국가와 활발한 교섭을 전개하였던 흔적이다.

이렇듯 신라에 들어온 물품이 북방적이며, 서역의 색채가 강렬한 것이라면 백제에 들어온 물품은 남방적이고 중국적이란 특징이 있다. 하지만, 완제품의 형태로 들여온 외래 물품과 기술을 우리 조상들은 곧 우리 것으로 만들어나갔다.

좁쌀만 한 금 알갱이를 이용하여 화려한 무늬를 표현하는 누금기법, 구슬이나 금속을 박거나 새겨 넣어 무늬를 표현하는 상감기법, 기물의 안쪽에서 두들겨 바깥쪽에 의도한 무늬를 나타내는 타출기법, 단단한 금속 표면에 조각칼로 정교한 무늬를 새기는 조금기법 등 복잡한 기술을 익혀 나간 신라 장인은 금관을 비롯한 국보급 장신구를 만들어냈다.

중국 도자기를 단지 수입만 하던 단계를 벗어나기 위해 백제 도공들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단단하면서도 유약을 발라 매끄러운 녹유도기를 만들어냈다. 전시품을 감상하면서 중국 문화의 국제성을 만끽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런 국제적 문화를 우리 것으로 소화해 낸 삼국시대 기술자들의 솜씨를 떠올리는 것도 좋은 관람 방법이 될 것 같다.

권오영(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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