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대인 기피증' 치료

입력 2007-12-11 07:36:49

이 세상에서 자식을 위해서 흘리는 어머니의 눈물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어머니 한 분이 상담실에 오셔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연도 모르고 그냥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본 순간 가슴이 아팠다. 궁금했다. 사연인즉 하나뿐인 아들 원호가 '대인기피증'으로, 집에서는 말을 하는데 밖에 나가면 말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방법을 써서 치료를 해보고 결국 몇몇 대학병원에서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원호의 두뇌를 교란시켜 정상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우선 원호의 마음속에 내가 들어갈 '가상의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지금까지 치료를 하기 위해 약을 많이 먹어 원호의 마음과 뇌는 경직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상의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학생의 정서불안을 치료한 모든 경험을 총 동원했다. 고민 끝에 내가 선생님에서 '도사님'으로 호칭을 바꾸어 원호의 무의식 속에 들어가서 대인 기피증을 일으키는 막힌 뇌신경 전달부분을 뚫어 호르몬을 정상적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원호 부모님과 누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의 치료법을 믿게 하기 위해서 원호에게 나를 '도사님'이라 부르라고 했다. 심리치료의 한 부분이다. 10월 9일 치료를 시작했는데, 11월 2일 점검을 위해서 원호의 반에 들어갔으나 1시간 동안 한 글자도 읽지 못했다. 원호는 눈만 껌벅거리며 땀을 흘렸다. 집에 오면서 어머니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더 독하게 훈련해야 한다.

매일 아침 원호는 나에게 대인 기피증 치료를 받는다. 먼저 가슴에 쌓인 보이지 않는 나쁜 기(氣)를 풀어내기 위하여 내가 고안한 '척추청소'란 체조로 시작한다. 그리고 원호는 나를 '도사님'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개발한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30분간 훈련을 한다. 3일 뒤 국어시간에 책을 읽는데 또 실패했다. 원인을 분석하여 이틀 뒤 교무실 중앙에서 도전했다. 또 계속 눈만 깜박거리며 말을 하지 못했다. "자! 도사님 눈보고, 한번 더, 한번 더 봐!" 이런 식으로 5분 정도 나와 눈을 맞춘 훈련을 한 끝에 겨우 '안'자 하나가 나왔다. 그러기를 또 반복했다. "안", "안", "안녕하십니까?"로 시작하는 자기소개서를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난 너무 흥분해서 감격의 포옹을 했다. 많은 선생님이 기뻐했다. 입학 후 2년 동안 원호의 소리를 한마디도 들어보지 못한 선생님들은 감동의 드라마라고 했다.

일주일 뒤에는 인근의 중리중학교 교무실, 일반 회사 사무실, 대명시장 등을 찾아가서 "세상 사람들이여! 길을 비켜라! 원호가 나간다."며 목이 터지라고 외쳤다. 많은 분들이 큰 박수와 따뜻한 커피로 격려해 주셨다. 이제 시작이다. 원호는 변할 것이다. 나는 원호가 교무실에서 자기소개서를 크게 읽었을 때 두 번째 울었다. 앞으로 몇 번 더 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원호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원수(경운중 교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