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갈등, 새 패러다임을 찾아서] ③네덜란드 남부 고속철사업

입력 2007-11-27 07:05:33

계획서 완공까지 34년…느리지만 절차 따라 '척척'

▲ 첫 논의 시작에서 완공까지 무려 34년이 걸린 네덜란드 남부고속철 HSL-Zuid. 나무 한 그루를 옮겨심는 문제에 대해 농부의 이의가 제기되면 환경전문가들이 찾아가 설명을 통해 이해와 합의를 이끌어 낼 만큼 세심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 첫 논의 시작에서 완공까지 무려 34년이 걸린 네덜란드 남부고속철 HSL-Zuid. 나무 한 그루를 옮겨심는 문제에 대해 농부의 이의가 제기되면 환경전문가들이 찾아가 설명을 통해 이해와 합의를 이끌어 낼 만큼 세심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로테르담을 거쳐 벨기에와 파리로 이어지는 네덜란드 남부고속철도(HSL-Zuid)가 올해 7월 공사를 끝내고, 막바지 안전점검이 한창이다. 연말쯤 고속철이 시속 300km 이상으로 달리게 되면 네덜란드는 트랜스-유로피안 네트워크의 한 축으로 등장하게 된다.

HSL-Zuid 건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1973년. 최종 완공까지 무려 34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1970년대 남부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정부계획이 발표됐을 때, 당시 네덜란드 사회에 번져갔던 환경주의와 시민운동의 영향으로 각계의 반대에 부딪히는 바람에 1991년 비로소 다시 추진하면서 늦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네덜란드 정부가 1991년 이전까지 HSL-Zuid 사업 추진에 대해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9년에는 국가의 전반적 이동 및 도로망 구축 스케줄 안에서 고속철도 사업을 논의했고, 1983년 '1990년대 네덜란드의 교통과 운수에 관한 국가계획'에도 남부 고속철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 1980년대 말 콕 총리의 연정합의 각서 내에 남부고속철 내용이 있었고, 1989년에는 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가 고속철 건설에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

정부의 의지가 그토록 강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속철도 건설에 30년 이상이 소요된 것은 우리의 관념에서 볼 때 언뜻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따라서 의무화되어 있는 네덜란드의 참여제도 PKB(Key Planning Decision)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덜란드는 국가의 도로사업이나 토지이용, 주택건설 등과 같은 공간계획에 관해 주요 결정을 할 때 반드시 PKB라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어 의회제출과 국민참여를 위해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PKB는 이러한 의견 수렴의 모든 절차를 표현하는 용어이기도 하면서, 사실상 전 과정이 복잡한 내각 내, 내각과 의회, 그리고 내각과 시민 간의 의사결정 과정 그 자체인 셈이다.

길고 복잡한 의사결정과정인 PKB는 크게 ▷내각이 사업의 초안을 공포하고 최대 12주 동안 시민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PKB 1 ▷시민참여 과정에서 도출된 의견들을 다양한 관점과 의견·자문·조언을 통해 정리한 PKB 2 ▷이제까지의 결과물을 정리해 내각이 수정안을 만들어 하원에 제출하는 PKB 3(하원은 수정안을 상원에 제출할 수 있음) ▷상원에 의해 승인된 PKB가 PKB 4를 이룬다.

PKB 4는 또다시 시민들에게 공개되며, 시민들은 일종의 재판정인 'Board of State'에 이의제기를 접수할 수 있다. PKB 1에서 이루어지는 시민참여는 형식에 규정된 것이 없으며, 개인의 간단한 메모에서 구체적인 대안, 기술적인 조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말로스 비서 네덜란드 교통·공공시설 및 수자원부 프로젝트매니저 어드바이서는 "PKB는 사업의 윤곽을 정하는 것이고 실행은 다른 차원"이라며 "기본구상 단계에서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함으로써 사업의 중요성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또 사업실행단계에서 생겨날 수 있는 갈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의 PKB가 완성되면, 주정부와 시정부는 각각의 지역계획과 상세계획을 만들어 추진하게 된다. 그런데 네덜란드 도로법(The Route Law)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정보 공유회를 몇 번 열어야 하고, 공청회는 언제 어디서 열어야 하는지, 또 계획 수정이 발생할 경우 반드시 다시 참여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등 세부사항을 일일이 규정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으로 보일 수 있는 과정을 끊임없이 계속하면서 의견 수렴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도록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이루어 놓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된다는 논리이다.

3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걸린 네덜란드 남부고속철도 건설은 주민의 참여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사업을 추진하는 네덜란드의 정치·사회 문화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헤이그에서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 프레드 F. W. 베이저링 HSL Zuid 프로젝트 홍보·여론 담당자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솔직히 너무나 많은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프레드 F. W. 베이저링 HSL Zuid 프로젝트 홍보·여론 담당자는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상원의 승인을 받은 PKB 4에 대해서도, 일부 늦게 접수된 것을 포함해 207개의 반대의견이 나왔다."면서 "이 중 노인인구가 많은 지역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자는 등 19가지가 받아들여져 계획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공사 중 옮겨 심는 나무에 대해 관련 농민의 이의가 제기되면, 환경전문가를 보내 협의하고 합의를 도출해 해결합니다. 터널공사 방식 변경 등 하청업체들이 공사를 진행하면서 보다 건설적인 제안을 해오면 검토해 수렴하고, 사업비 증가가 계약회사의 책임이 아닐 때는 정부에서 늘어난 비용을 부담합니다."

프레드 씨는 "이처럼 여론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반영하다 보니 공사기간은 당초 계획보다 2년이 늘어났고, 공사비용도 19% 정도 급증했다."면서 "지방정부에서 재정을 부담해 고급주택가 예정지를 지나는 고속철 노선을 지하화하고, 그 대신 고급주택을 지어 높은 분양가를 책정함으로써 재정지출을 만회한 경우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프레드 씨는 "이미 PKB 과정을 거쳐 HSL Zuid 사업이 국민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의 공유가 있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반대는 없었고, 단지 사업추진 과정에서 환경과 주민생활 편의 등과 관련된 작은 조정이 있었다."면서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합의안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의견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갈등해결에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 기자의 눈

의견 수렴을 통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다시 협의하고, 그래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또다시 협의를 계속하는, 그리고 이를 법으로까지 규정해 제도화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문화는 어디에서 기원됐을까.

전문가들은 국토의 25%가 해수면 아래 위치한 네덜란드는 물로부터의 생존이 국민 공통의 목표였고, 이렇게 물과의 전쟁을 위해 서로 논의하고 협의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 공공프로젝트 진행에 있어 독특한 참여과정이 확립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는 범람으로 인해 사람들의 이동이 잦아서, 영주들이 자신의 주권 존중과 세금납부라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시민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때부터 발전되어 온 '견제와 균형의 문화'는 요즘 개념의 민주주의(다수결)와는 다른 '타협과 협상의 체계'를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자발적으로 스스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현대 네덜란드 국민의 캐릭터이자 시민의 자질로 요구되는 특징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화를 악용해 끝까지 공공개발을 반대하는 '환경원리주의자'나, 우리식으로 소위 '알박기'를 해 사회적 이익을 훼손시키면서 개인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해답은 사법부에 있었다. 지루하고 지나칠 정도로 의견수렴과 사회적 합의 형성에 노력하는 네덜란드이지만 끝까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사법부에서 최종 판단을 하게 돼 있다.

그런데 HSL Zuid에 끝까지 반대한 7명은 사법부에 제소하지 않았다. 사법부에서 합의과정에서 제시된 내용보다 휠씬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 100%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개인의 의견과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면서도 반사회적인 사람들에게는 사법부가 확실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합의의 문화'는 성숙되고 있었다.

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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