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선문스님

입력 2007-11-15 17:02:14

선문스님(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이 경북 성주의 시골에서 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시작하자 동네 사람들이 물었다.

"스님, 촌에 밥 굶는 노인이 없는데 급식을 왜 하십니까?"

"집 있고 논'밭 가진 농촌 노인이 무엇이 답답해 밥을 얻어먹는다는 말입니까?"

도시에 사는 아들은 고향의 홀어머니가 무료 급식소에서 밥 얻어먹는다는 소식에 언짢은 목소리로 전화를 냈다.

"어머니, 집에 쌀이 없습니까? 찬이 없습니까? 어머니가 거기서 밥을 드시면 제가 어떻게 낯을 들고 삽니까?"

그래서 이 노모는 한동안 다니던 무료급식소엘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들과 딸, 며느리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무료 급식소에 다시 나왔다.

선문스님은 선석사(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주지로 부임한 2004년부터 인근 면'읍의 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관운사 지산스님이 팔을 걷어붙였고 대흥사, 감응사, 길조암 등 인근 사찰'암자의 도움으로 시작한 급식이었다. 이들 사찰과 암자가 급식행사를 시작한 것은 동네 사람들 이야기처럼 밥 못 먹고사는 노인이 많아서가 아니다.

선문스님은 "밥은 매개일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시골에는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많다. 게다가 시골집은 뚝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종일 이야기 나눌 상대가 없다. 점심 때 봉고차로 먼길을 달려가 노인들을 모셔오는 이유는 그들에게 이야기할 시간, 친구를 만날 기회, 건강을 점검할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노인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외출하고, 친구를 만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는 것이다. 스님은 "사회복지는 밥 한끼 먹여주고, 일정금액 돈을 쥐어주는 게 아니다."고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외출로 누가 어떻게 사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매번 나오던 사람이 안 나오면 궁금해하고,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노인들 중에는 아파도 치료를 꺼리는 사람, 혼자 먹는 밥이니 대충 먹거나 한 두끼 굶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집안 어디가 허물어져도 방치해 더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정기 급식을 통해 한끼 식사가 아니라 혼자 사는 노인들이 가진 어려움을 확인하고 덜어줄 수 있지요."

시골동네의 급식은 도시처럼 일사불란하지 않다. 시간을 딱 정해놓고 밥을 퍼주기만 하면 노인들이 몰려오는 것이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더러 몇 십리를 걸어 와서 한끼 먹고 가세요, 라고 할 수도 없다. 일일이 모시러 다녀야 한다. 초창기에는 그 일을 절의 보살들이 맡았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를 떠나 인근 마을전체의 일이 됐다.

마을 아낙들이 일일이 노인들을 모셔오자 아내의 수고를 안쓰러워하던 남편이 함께 길을 나섰다. 남편이 동행하자 '식사'가 아니라 집안 일도 도울 수 있었다. 장작도 패주었고, 여기저기 허물어진 곳은 다시 세우고, 뚫린 곳은 메울 수 있었다. 혼자 사는 노인이 해낼 수 없었던 일, 여자의 힘으로 해내기 힘든 일을 남편들이 맡아 준 것이다.

선문스님은 복지는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함께 노인들을 모시러 다니면서 남편과 아내는 대화가 늘었다. 이야깃거리가 없어 종일 멀뚱하던 남편과 아내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부부가 힘을 합쳐 해낸 일을 서로가 칭찬할 줄도 알게 됐다. 가정이 화목해지니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배려하는 마음도 생겼다.

'노부모가 밥 얻어먹으러 다닌다.' 며 낯부끄러워하던 도시의 아들과 딸들도 그 속에 한끼의 밥이 아니라 이야기와 웃음이 있음을 알게됐다.

선문스님은 선석사를 떠났지만 급식사업은 변함 없이 이어지고 있다. 스님은 "한끼 밥을 퍼주며 웃어주는 게 복지는 아닙니다. 삶의 의미, 삶의 즐거움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마다 사정이 다른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돈이나 쌀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복지를 바라보는 시각도 변해가야 합니다. 복지는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돕거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함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라고 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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