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차)는 반잔이 제 맛이지만 술은 잔에 가득 차야 제 맛이다"는 말처럼 한국인의 술 실력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미 戒盈盃(계영배)가 있었으니 우리의 선조들은 무절제한 음주를 상당히 경계한 모양이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서 더욱 유명해진 계영배는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의미다. 잔을 가득 채우면 모두 흘러내리고 7할 정도 채워야만 온전하게 마실 수 있게 만들어진 잔이다.
소설의 주인공 임상옥은 스승이었던 석숭 스님에게서 그 잔을 받는다. "이 잔이 너의 마지막 위기를 잘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이 잔이 너를 전무후무한 巨富(거부)로 만들어 줄 것이다." 수수께끼 같은 스님의 말씀이었지만 먼 훗날, 조선최고의 巨商(거상)으로 우뚝 선 임상옥은 스님의 그 말씀을 상기하고 마침내 그 교훈을 깨닫는다.
크기가 얼마인지 깊이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끝없는 욕망을 가득 채우려 하지말고 어느 정도 비워두라는 가르침이다. 지나치게 채우려 한다면 넘치고 만다는 商道(상도)의 철학을 술잔을 통해 전해 준 것이다.
강원도 원주시가 술 덜 마시기 차원에서 현대판 계영배인 '건강 절주잔'을 배포해서 화제다. 이 잔은 기존 소주잔의 3분의 1 크기인데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이달 들어 1만 5천 개를 만들어 음식점에 나누어줬다고 한다. 특히 맥주잔도 기존의 절반 크기로 제작, 소주 폭탄주를 만들 경우 부담없이 마실 수 있어 폭탄 애호가들의 주량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것.
극성스럽게 행정당국이 시민들 술자리까지 간섭한다는 의문도 들지만 '폭탄문화' 세태에 조금이라도 덜 마시게 하려는 지자체의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유대인들은 계영배를 만들기보다 술을 동물에 비유해서 가르치고 있다. "술을 처음 마실 때는 양같이 온순하지만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납게 되고, 조금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거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더 많이 마시게 되면 토하고 뒹구느라 돼지처럼 추하게 된다"고 탈무드는 적고 있다.
요즘은 시중에서도 계영배(?) 구하기가 쉬워졌으니 잔을 하나 구해 책상머리에 두고 이 가을 '비움의 철학'을 반추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윤주태 중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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