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그 까이꺼...

입력 2007-11-08 16:59:18

'시골에 사는 나이든 아버지와 어머니가 휴대폰 앞에서 '쇼'를 한다. 고장난 TV를 배경으로 도시에 사는 아들에게 보낼 영상 메시지를 촬영하는 중이다. 늙은 부모는 "아범아, 잘 있지? 우리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아∼무 것도 안 나온다. 연속극, 옆집에 가서 본다."며 손으로는 고장난 TV를 두들겨 댄다. 이윽고 동영상을 받은 아들은 '하하하, 아부지 알았어요, 알았어요. 바꿔 드릴게요.' 라고 말한다.'

이 휴대폰 광고는 자사 휴대폰의 동영상 우수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말로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동영상이 전달하는 화면(고장난 TV의 지지지 잡음과 그 TV를 손으로 탁탁 쳐대는 어머니)에는 '필요'가 절절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에 사는 노부모가 그런 식의 '쇼'로 TV를 얻었을까, 하는 의구심은 남는다. 40대 직장인 김 모씨는 "노부모가 고장난 TV를 새 것으로 바꾸고 싶었다면, 아들이 아니라 딸이나 며느리에게 동영상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이 아들의 자조는 단순히 경제적인 능력 혹은 집안 경제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2006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아들이 꼭 필요하다는 기혼 여성은 10명 중 한 명'뿐이었다. 기혼 여성의 절반(49.8%)은 '아들이 없어도 괜찮다.'고 답했다. 15년 전(1991년) '아들이 없어도 괜찮다.'고 답한 여성은 28% 정도였고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밝힌 여성은 40.5%였다.

이제 가정에서 아들은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고 있다.

"아들? 뭐 그 까짓 것"의 내막을 살펴보았다.

◇ 강남에는 시부모 호텔이?

서울강남에는 시부모 호텔이 있다고한다. 시골에서 잠깐 아들 집에 올라온 시부모를 불편하다는 이유로 집에서 모시지 않고 호텔로 모시는 집이 늘기 때문. 강남 어느 호텔에 가면 시골에서 올라온 시부모들이 자주 눈에 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 시부모호텔이란다.

많은 부모들은 아들집보다 딸집을 편하게 여긴다. 물론 딸이 아들보다 다정하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이 말에는 '며느리보다 차라리 사위가 편하다.'는 함의가 있는 듯 했다. 결혼한 딸집에 자주 머문다는 60대 중반의 한 여성은 솔직히 말하면 "며느리보다 사위가 편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며느리는 세세한 데까지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사위는 별 무관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분가해 사는 아들집에서 며칠 묵기는 생각보다 훨씬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며느리가 다정하게 '어머님, 어머님' 하지만 그 말에 '엄마!'라고 막 불러대는 딸만큼 애정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고 했다.

한 여성학자는 "딸을 선호하는 이유 중에는 언제 떠날지 모를 며느리를 믿기보다, 설령 이혼을 하더라도 내 곁에 머물 딸을 믿는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딸자식이 이혼할 경우 부모들이 갖게되는 부담보다 아들자식이 이혼할 경우 갖게 되는 부담이 크다는 점도 아들을 덜 선호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40대 후반의 주부 김모씨는 "딸은 결혼을 시키고 나면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는데, 아들은 끝까지 신경을 쓰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식이 이혼한 경우 손자'손녀에 대한 양육 책임이 딸의 경우보다 아들의 경우가 크다는 말이었다.

◇ 다정한 딸, 무뚝뚝한 아들

아들 둘인 김주영(49. 수성구 지산동)씨는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이 다가오면 스트레스를 받는 다고한다. 주변에 딸가진 엄마들은 딸로 부터 화장품을 선물 받았다니 꽃을 선물받았다고 자랑하는데 아들들은 결혼기념일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고 한숨지었다. 그러면서 딸고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엄마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고했다.

전영주 신라대 교수는 "아들보다 딸이 부모에게 더 잘한다는 관념이 커진 것도 아들 선호도를 떨어뜨린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딸이 아들보다 부모를 더 다정하게 대하는 이유로 "여성과 남성의 해부학적 차이가 있다. 사회적 차이뿐만 아니라 여성의 자아는 관계 맺기에 기초를 두고 성장한다. 공존에 가치를 많이 둔다는 것이다. 현대사회 가족에게 요구되는 부분은 바로 관계와 공감이다. 딸은 평생을 통해 부모와 관계 맺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남성은 관계 맺기의 기술이 여성보다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제 관계중심의 가족개념이 혈연과 제도중심의 가족을 넘어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고급 실급타운에 사는 노인들 중에 아들만 있는 노인은 왕따가 된다고 한다. 양로원으로 음식 사들고 놀러 오는 사람은 전부 딸이고 아들은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스개 같지만 다감한 딸과 무뚝뚝한 아들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노인 봉양의 70%를 딸이 책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성인 딸은 부모와 관계를 끊지 않고 물리적 정신적 지지를 남성보다 더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칭찬 받고 싶은 남편 사랑 받고 싶은 아내'의 저자 마츠모토 유지는 그의 책에서 '남성은 공격적이고 성공 지향적이다. 남성은 업무상의 목표를 성공시키기 위해 대단한 정열을 불태우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 여성은 감성적이고, 사업 자체의 성공이나 목표달성보다는 상사나 동료와의 관계 또는 남편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는 관계 지향적이다.'고 말한다.

화가 한젬마씨는 "남편에게 이야기 좀 하자, 고 하면 깜짝 놀란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 이유를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남자들은 이미 결론을 내린 다음 통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이 '이야기 좀 하자.'고 말하는 것은 대화를 시작해보자, 부부니까 무슨 일이든 논의를 해보자는 뜻이라며 '대화를 생각하는 남녀의 태도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집에 필요한 물건 구입에 관한 대화를 두고도 남성은 '허락을 받으란 말이냐?'고 여기고, 여성은 '의논해보자.'로 여긴다는 것이다. 대화를 보는 이 같은 기질적 차이가 부모에게는 '다감함'과 '냉랭함'으로 와 닿는 것은 당연하다. 부모입장에서는 다감한 자식이 좋을 수밖에 없다.

◇ 아들과 '홀로서기' 필요해요

어느 50대 주부들의 모임. 아들에 대한 서운함이 쏟아졌다. 요즈음 유행하는 아들에 대한 유머를 늘어놓으면서 늙어 서럽지 않으려면 아들로 부터 '홀로서기'를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들 믿고 있다간 서러움 덩어리라는 것이다. 시부모교육을 스스로 미리 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은 배반과 분노라는 것이 대세였다.

가족관계 전문가들은 아들선호경향이 줄어든 또 다른 원인으로 자녀관의 변화를 꼽는다. 이전까지 자녀계획은 부모를 위한, 부모중심이었다. 예전에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면, 자녀는 부모의 노후를 봉양하는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노후를 자녀와 함께 살겠다는 노인은 크게 줄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6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노후생활 지원이나 경제적 도움을 받기 위해 아들이 필요하다는 여성은 3.6%(복수응답)밖에 되지 않았다.

2005년 통계청 조사에서도 더 이상 부모들이 자녀의 노후 봉양을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60세 이상 노인 가운데 52.5%가 '자녀와 같이 살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전영주 신라대 교수(가족노인복지학)는 "아들 선호 사상이 약해지는 것은 노후 보장이 사회와 국가의 책임 문제로 바뀌면서 자녀에 대한 의존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50대 직장인 허모씨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딸 둘을 낳고 좀 늦게 아들을 낳았지만, 노후에 아들과 함께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 동료들 중에도 노후를 자녀와 함께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40대 주부 김모씨 역시 "같이 살고 싶다고 해도 살기 힘들겠지만, 혼인시킨 후에는 자녀 문제에서 벗어나 인생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크다."고 했다. 상황이 그러니 딸과 아들을 구별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딸 하나를 둔 30대 후반 직장인 김씨는 "아이가 크는 동안 행복하게 키우고, 성인이 되면 떠나면 되는 것,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굳이 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둘 이상을 기르기는 경제적으로 어렵다. 주변에 아들 가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딸 가진 내가 더 재미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딸에게 노후를 기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딸도 돈 잘벌어요

요즈음 옷잘 입은 60대 엄마들은 대개 딸이 있는 할머니들이다. 유행하는 머리며 구두 핸드백을 들고 젊은이 못지 않은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할머니들은 대부분 " 딸들이 사주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여성학자 최보현씨는 여성의 경제적 지위와 관련해 "비교적 최근까지 대다수 여성이 임금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가정에서 가사노동을 수행했다. 우리 사회는 가사노동을 화폐가치를 갖는 생산적인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했다."라고 평가했다. 여성의 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아들에 비해 '덜 쓸모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증가했지만 80년대까지 여성인력은 단순노동 혹은 섬유와 전자제품 조립 등 노동 집약적인 분야에 집중됐다. 특히 결혼 및 육아로 인한 취업의 불연속성, 대졸 이상 고학력 여성의 높은 실업률 등도 여아 기피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딸 그거 공부시켜서 뭐 할 거고…"라는 생각의 바탕에 어차피 대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여성 학자들은 "가사노동을 여성의 천부적인 일, 무보수 노동으로 간주하는 사회통념, 주부를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보는 인식이 여성을 경제적, 사회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하는 존재, 피부양자로 규정해 여성의 지위를 낮췄다."고 분석한다. 또 취업 여성의 경우에는 직장일과 집안 일을 동시에 맡아야 했기 때문에 부담과 갈등이 많았다. 가정 내 갈등은 물론, 직장에서도 남성과 달리 업무에만 몰입하기 힘든 특수상황으로 이른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지식정보화 사회의 진전과 산업구조 유연화에 따라 여성 친화적인 업무가 증가하고, 국가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번영을 위해 여성인력의 활용이 중요하게 대두되면서 여성의 지위는 점차 향상되고 있다. 이 같은 여성 지위의 상승이 더 이상 남아를 선호하지 않게 된 한가지 배경으로 평가되고 있다.

◇ 장가 간 아들은 '사돈의 8촌'

아들에 대한 섭섭함과 여아 선호 세태를 담은 유머도 많다.

△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진 아들은 내 아들.

△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이 되고, 군대에 가면 손님, 장가가면 사돈이 된다.

△ 낳았을 땐 2촌, 대학가면 4촌, 군대 다녀오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애 낳으면 동포, 이민가면 해외동포.

△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

△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 그림자,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 자녀를 출가시키면, 아들은 큰도둑, 며느리는 좀도둑, 딸은 예쁜도둑.

△ 미X여자 시리즈=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그 중에 상태가 가장 심각한 여자는 '며느리 남편을 아직도 자신의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 딸 하나를 둔 여자는 딸 뒤치다꺼리하느라 부엌에서 죽고, 딸 둘을 가진 여자는 비행기 안에서 죽는다. 두 딸이 하도 해외여행을 자주 보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들 둘을 가진 여자는? 길바닥에서 죽는다. 이 아들도 저 아들도 밀쳐내니 오락가락하다가 객사한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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