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치는 슈퍼맨'…레크리에이션 강사 석주곤씨

입력 2007-11-03 07:33:10

두류공원 휴게소에서 매주 일요일 무료공연…팬카페 회원 230명

▲ 석주곤 씨가 대구 두류공원에서 무료공연을 하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석주곤 씨가 대구 두류공원에서 무료공연을 하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석주곤 씨의 무료공연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시민들.
▲ 석주곤 씨의 무료공연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시민들.

지난달 28일 오후 대구 두류공원 산마루휴게소 뒤 간이무대. 단풍이 아름답게 들고 낙엽이 흩날리는 공원에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산책하던 사람들이 노랫소리를 따라 무대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대의 주인공은 레크리에이션 강사인 석주곤(35) 씨.

석 씨는 두류공원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슈퍼맨'이라고 불린다. 지난 5월부터 두류공원에서 매주 일요일 무료공연을 펼치고 있다. '슈퍼맨 석주곤의 행복한 공연'이라고 불리는 이 공연은 노래와 유머, 춤이 있는 스탠딩 개그콘서트이다. 여름철에는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가을철에는 오후 4시부터 4시간가량 열린다. 보통 4시간 정도 공연을 열지만 석 씨의 컨디션이 좋고 시민들의 반응이 좋으면 1, 2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그래서 슈퍼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망토를 걸친 슈퍼맨 복장을 하고 공연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쉬지 않고 노래한다고 해서 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는 대구사람이 아닌 서울 토박이다. 서울에서 이벤트회사를 운영하다가 3년 전 대구의 한 케이블방송의 MC로 대구생활을 시작했다. 방송활동과 행사 전문MC를 하다가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대구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거리공연을 시작했다.

"대구에서 생활하면서 사람들에게 친하게 다가가고 싶은데 잘 받아주지 않아 힘이 들었습니다. 각종 행사에서 MC를 볼 때 반응이 너무 적어서 놀랐습니다. 특히 40대층은 아무리 웃기려고 해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돈 안 받고 그냥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거리공연을 결심했죠."

휴게소 대표에게 공연을 허락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간이무대를 빌렸다. 석 씨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무료 공연을 해왔다. 갈수록 관객이 늘었다.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은 300명. 보통 한 회 공연에 200~250명이 몰린다. 지난달 28일 올해의 마지막 공연을 했다. 석 씨는 "처음엔 나를 위해서 시작한 공연이었지만 공연을 하면 할수록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힘이 났다."고 말했다.

공연이 거듭되면서 인터넷에는 팬카페도 만들어졌다. 회원은 230명이나 된다. 10대부터 50대까지 팬층이 두텁다. 가족끼리 산책을 나왔거나, 운동을 하러 왔다가 석 씨의 노랫소리를 듣고 팬이 됐다.

석 씨는 노래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를 벌여 시민들을 즐겁게 한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한 30대 남자는 석 씨에게 여자친구를 위한 프러포즈 이벤트를 부탁하기도 했다. 한 초등학생은 자신의 엄마를 위해 생일이벤트를 열고 싶다고 부탁했다. 석 씨가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초등학생이 편지를 읽고 시민들은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팬들은 언제나 든든한 힘이 됐다. 음료수를 선물하거나 김밥 등 도시락을 선물로 주는 시민들을 보면 공연을 멈출 수가 없었다.

노은희(42·여·대구시 남구 대명동) 씨는 지난 8월 가족과 함께 더위를 식히기 위해 공원을 찾았다가 석 씨의 팬이 됐다. 노 씨는 "일요일마다 가족과 함께 석 씨의 공연을 보고 있다."면서 "석 씨는 삭막한 도시에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안학조(40·여·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씨는 팬카페에서 석 씨의 매니저로 통한다. 지난 7월 이웃과 함께 운동하러 왔다가 음악소리를 듣고 석 씨의 공연을 처음 접했다. 음색이 마음에 들었고 목소리에 호소력이 있었다. 안 씨는 "석 씨가 공연을 너무 오랫동안 하면 목이 아프기 때문에 쉬엄쉬엄 하라고 호통을 친다."고 웃었다.

홍희영(36·여·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씨는 팬카페에서 군기반장이다. 술 취한 사람들이 공연을 방해하면 말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홍 씨는 "항상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는다."면서 "혹시 술 취한 사람들이 공연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신경쓴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은 두류공원에서 여는 올해의 마지막 공연이 됐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더 이상 야외공연은 힘들기 때문이다. 마지막 노래를 부르던 도중 석 씨는 눈물을 흘렸다. 팬카페 회원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줘서 고맙다."는 감사장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 씨는 길거리공연을 계속할 예정이다. "올해 야외공연은 추위 때문에 더 이상 못하지만 실내에서 소년소녀가장돕기 모금공연과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곧 시작할 예정입니다. 카페 회원들과 함께 지하철역 등지에서 의미 있는 공연을 열겠습니다."

대구 거리공연 문화는 척박하다. 길거리공연을 하는 사람은 있지만 구경하는 시민들의 반응이 적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박수가 부족하고 수동적인 경우가 많다. 대구사람들은 표현에 인색하다. 공연할 때 섭섭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팔짱 끼고 박수 안 치는 사람이 많다. 술 취해서 악기를 만지거나 쓰러뜨리는 사람도 종종 있다. 무료공연이기 때문에 공연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시민을 보면 힘이 빠진다. 공연하는 동안 주택가에서 시끄럽다며 경찰에 신고한 적도 많았다.

올해는 두류공원에서 40회 공연으로 마무리했지만 내년에는 50~60회로 늘릴 예정이다. 석 씨는 "1천 회 공연을 기록하고 싶다."면서 "거리공연을 보면서 시민들이 도시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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