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대학생활 접고 폐암 엄마 간호 지윤씨

입력 2007-10-31 09:30:19

"불행했던 엄마 행복찾게 해주세요"

▲ 폐암을 앓고 있는 이미숙(가명) 씨가 대구 중구의 철도변 인근 집에서 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폐암을 앓고 있는 이미숙(가명) 씨가 대구 중구의 철도변 인근 집에서 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막막하고 답답할 뿐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기댈 곳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견뎌온 우리 가족의 삶은 마치 외딴 섬에 덜렁 버려진 듯했다. 두렵고 무섭고 또 외롭지만 썩은 동아줄을 부여잡고 있는 엄마를 쉽게 놓을 수 없다. 같이 살아가야 한다. 지옥 같은 이생에서 조금이라도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젠 떠올리기조차 싫은 기억이지만 아빠는 폭력적이었다. 신경쇠약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아빠는 흉기로 엄마의 목에 선명한 상처를 내놓았다. 엄마는 바로 그날 아빠가 타 온 신경안정제 수십 개를 들이켰다. 그냥, 잠시만이라도 지옥 같은 일상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깨어나서는 날 부둥켜안고 미안하다 했다. 우리에게 상처만을 남긴 아빠는 몇 년 전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떠났다. 차라리 없는 편이 낫겠다며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고 했을 때 엄마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엄마는 자식의 미래에 혹여 흠이 될까봐 여태 이혼합의서에 도장을 찍지 못하고 있다.

그런 우리 엄마가 올해 초 폐암 말기를 선고받았다. 지난해부터 엄마는 헛기침을 하고 피를 토했다. 몸이 붓고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며 답답해 했지만 병원에서는 기관지 천식이라는 말뿐,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엄마의 치료를 위해 우리 집, 가내공업을 하던 지하방이 딸린 집을 팔았다. 집 말고도 팔아야 할 것은, 팔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팔아야 했다. 이제 철도길 옆으로 옮긴 작은 집, 몹쓸 먼지와 소음이 자욱한 한 칸 방에서 엄마는 텔레비전을 볼 힘도 없이 온전히 누워만 있다. 가장 강력하다는 항암제도 별 소용없이 물에 말아야만 밥을 삼킬 수 있는 엄마가 저렇게 야위어가며 나의 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다짐했던 행복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걸까. 우리의 불행은 복권에 당첨되어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짙고 뿌옇게 됐다.

30일 오후 대구 중구의 경부선 철도변 인근. 수십 년도 더 돼 보이는 작은 맨션 311호에 이미숙(가명·50) 씨가 딸 지윤(가명·24) 씨의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보일러를 돌리기에도 빠듯한 형편이었다. 이불을 똘똘 말아 덮고도 연방 헛기침을 하던 엄마는 "춥지 않니?"라며 오히려 딸을 걱정했다.

대학교 4학년인 지윤 씨는 벌써 2년째 휴학 중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엄마의 밥상을 차리고 몸을 닦아주고 설거지를 하며 늦은 밤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동생(18)이 그 흔한 학원 한 곳도 다니지 못한다며 그래서 공부를 못하는데 그 탓도 할 수 없다며 걱정했다. 신용카드와 은행 대출로 벌써 3천만 원이 넘는 빚을 졌다. 얼마 전 대출한 1천만 원은 엄마의 병원비로 들어갔다. 밀린 세금을 내라는 독촉장도 날아들고 있다.

"어릴 때 엄마가 카스텔라를 만들었어요. 우리 엄마는 요리를 잘 못해서 먹는 게 고역이었는데···.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이불 속에서 텔레비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호호 불어 먹던 그 카스텔라가 바로 행복이었던 것 같아요."

지윤 씨는 소원이 있다면 엄마와 함께 어디 공기 좋은 요양원에서 몸을 다스리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데 쿵쿵거리던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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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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