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문의 펀펀야구] 야구와 나

입력 2007-10-26 09:10:34

꼭 만나야 할 인연은 정말 묘한 것이서 비켜가지 않는가 보다. 필자의 경우가 그랬다. 1983년 프로야구 태동 2년째 영남대 선박용기계과 4학년이었던 필자는 일요일마다 모교인 대구고 야구장에서 사회인야구 경기를 취미삼아 하고 있었다.

7월 무렵이었나보다. 한창 경기 중인데 느닷없이 삼성 라이온즈 버스가 들이닥쳤다. 원정 이동 전에 1시간만 연습을 하잔다. 하늘같은 프로인데 감히 싫다고 할 수 없었고 우리는 담벼락 밑 풀밭에 앉아 프로의 연습을 꿈처럼 지켜보았다. 매니저가 다가와 경기를 중단시켜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연습을 도와줄 아르바이트 불펜 포수가 필요한데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팀내에 선수 출신이 한명 있어 의향이 있는지 물어 봤더니 당연히 하고 싶단다. 며칠 뒤 홈 경기때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당일 시민야구장으로 찾아 갔는데 이 친구는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소개차 같이 가기로 했는데 뜻밖에 필자만 남아 엉뚱하게 역할을 대신하게 되어 버렸다.

야간경기였는데 연습복을 갈아입고 불펜으로 나갔더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오늘만 하고 말아야지 마음먹고는 걸어가는데 황규봉, 김시진, 이선희, 권영호 등 기라성같은 투수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아닌가. 등줄기에 식은땀이 저절로 흐르는데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도 아득하고 아련하다. 첫날을 무사히(?) 넘긴 필자는 다음날에도 같은 자리에 서게 됐고 이후 원정경기에도 동행을 하게 됐다.

원정경기 때 필자는 종종 기록원 방에 들리곤 했다. 당시 기록원은 고교 교사 출신으로 야구기록의 전문교육을 받은 기록원이 아니었다. 늘 연봉 채점 문서를 펼쳐 놓고는 끙끙댔다. 일본 프로야구단에서 흘러나온 경기평가 채점문서를 그대로 번역한 것인데 항목만도 투수 및 수비, 타격을 합해 200여 개나 되었고 일일이 한 타석마다 평가된 채점 점수를 좁은 공간에 써넣어야 해 몹시 힘들어했다.

별다른 일이 없었던 필자가 가끔 방에 들러 도와주곤 했는데 시즌이 끝난 후 기록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직 적지 못한 반 시즌 분량의 텅 빈 채점 문서만 남긴 채. 어느날 매니저가 서류 뭉치를 건네주면서 열흘간 시간과 수당을 줄 테니 한번 해보라고 권해왔다. 못해도 좋으니 한번 해보라는 것. 미적미적 서류를 받아 집으로 돌아온 필자는 채 곧 눈이 아파서 손을 들고 말았다. 서류를 머리맡에 던져둔 채 이틀 간 바람을 쐬고 돌아 왔다.

귀신도 깜작 놀랄 일이 벌어져 있었다. 누군가 어느새 빈 공간을 모조리 채워 놓은 것이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아무도 몰래 서울에서 대한야구협회 공식기록 수업을 받을 정도로 야구광이었던 필자의 동생이 재미삼아 해놓은 일이었다.

도시락까지 싸들고 야구장을 즐겨 찾았던 필자의 동생 덕분에 일주일을 푹 쉬고 서류를 제출한 필자는 동생 대신 구단의 공식기록원 업무를 제의 받았고 그 길로 바다 대신 그라운드가 일터가 되고 말았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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