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는 개를 왜 데리고 다녔을까요?"
'구로프'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 여자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남성입니다. '저급한 인종'의 부인 사이에 열두 살 딸 하나와 중학생 아들 둘을 두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항상 아내 외의 다른 여자들이 있습니다. 휴가지에서 만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안나 세르게예브나(안나)에게 그는 매료됩니다. 안나는 20대 초반의 나이로 결혼한 여인입니다. 남편에게 아프다는 핑계로 휴가를 온 그녀는 결혼에 회의적인 인상을 풍깁니다. 알고 지낸 지 일주일 후 두 사람은 정사를 나눕니다. "난 타락한 여자에요. 남편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배반한 거예요"
이전에 만나온 여자들과 달리 안나에게서는 세상에 닳지 않은 순결함이 느껴집니다. 안나의 남편에게서 돌아오라는 연락이 옵니다.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는 군요. 그래야겠지요. 잊지 못할 거예요." 안나는 떠납니다. 구로프도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그저 유희로만 여겼던 일탈이 사실은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구로프는 안나가 사는 곳으로 갑니다. 그 후 두세 달에 한 번씩 두 사람은 만납니다. 구로프가 사는 도시로 안나가 찾아옵니다. 그들의 이중생활이 시작됩니다.
'개를 데리고~'을 쓴 작가 안똔 빠블로비치 체호프(체호프)는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입니다. 포우, 모파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단편작가로 꼽힙니다. 헤밍웨이나 버지니아 울프 등 저명한 작가들은 체호프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의 단편은 간결함과 해학성이 돋보입니다. 그가 그리는 해학성은 유쾌함이 아니라 다소 섬뜩한 느낌, 풍자적인 쓴웃음을 줍니다.
'개를 데리고~'는 체호프가 직접 고른 단편선집입니다. 표제작 '개를 데리고~'외에 수록된 단편들은 일상적 사건, 평범한 인물 속에서 극적인 효과를 줍니다. "어떻게 되어야 할 삶 보다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쓴다"는 체호프의 말처럼 작가는 재판관이 되기보다 객관적인 증인이 됩니다. 단편 '개를 데리고~'의 경우도 불륜에 빠진 두 남녀가 앞으로 어떤 삶을 선택할 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저 두 사람이 현재 처한 사실을 전해줄 뿐입니다.
'개를 데리고~'의 주인공 구로프는 딸의 등굣길에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기온은 3도인데, 그래도 눈이 내리는구나." "하지만 따뜻한 것은 땅의 표면이지, 대기의 상층에서는 기온이 전혀 다르단다." 눈이 내릴 수 없는 온도에 눈이 내리는 현실. 전혀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실의 공존. '땅의 표면'과 같이 공개적인 생활과 '대기의 상층'처럼 은밀히 숨겨진 생활. 두 가지 중 어떤 것을 진실이라고 감히 판단할 수 없는 상황.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얽혀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이중적인 삶.'
구로프는 자신의 공개된 삶은 가식적인 것이고, 안나와의 만남만 진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로프는 안나에게 조차도 솔직하지 않습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숨깁니다.
안나는 어떨까요? 구로프가 생각하는 안나는 순수하고 애처로운 여인입니다. 구로프와 사랑에 빠지고 그 남자를 잊지 못해 가슴 아파합니다. 숨어서 만나는 생활이 싫지만 그렇게라도 그와 만남을 지속하고 싶어 합니다. 과연 안나에 대한 구로프의 생각은 진실일까요?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상상의 시작은 의문에서 시작됩니다. "안나는 왜 개를 데리고 다녔을까요?"
나의 이름은 '안나'입니다. 호기심 때문에 스무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뭔가 다른 삶이 있을 것 같았던 결혼은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남편에게 아프다고 말하고 여행을 떠납니다. 변화가 필요합니다. 휴가지 곳곳에 개를 데리고 걸었습니다. 이정도면 충분히 이목을 끌 수 있습니다. 3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성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역시나 개를 으르면서 접근해옵니다. 상투적인 방법이 식상했지만 매력적인 남자입니다. 그는 자신을 '구로프'라고 소개했습니다. 처음 정사 후 순진한 여자를 만났을 때 난처해하는 남자의 눈길이 보입니다. 그는 휴가를 함께 보내기에 괜찮은 사람입니다. 때마침 남편에게서 눈병이 났으니 돌아오라는 편지가 옵니다. 애절한 눈빛으로 "잊지 못할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그 정도 인사는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따분한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전히 개를 데리고 산책합니다. 뭇남성들의 시선은 간간이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어느 날 남편과 함께 간 공연장에 구로프가 나타났을 때 심장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라고 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다시 만난 구로프는 여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애절한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구로프와는 두세 달에 한 번 만나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의 도시에서 만나는 것이 안전하겠지요. "어떻게 하면?" 이중생활에 힘겨워 하며 내뱉는 그의 말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그도, 나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전은희(출판부)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