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슐리만이 에도에서 본 것은

입력 2007-10-18 11:11:54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은 트로이 유적 발굴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러시아와 미국에서 큰 돈을 벌어들인 무역상이었다. 트로이 발굴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사업을 중단한 그는 1865년 세계여행 길에 올라 청나라와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 여정은 2년 후 파리에서 '현재의 중국과 일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기행문집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슐리만이 요코하마에 도착한 것은 1865년 6월, 도쿠가와 막부 말기다. 당시 에도(현 도쿄)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미국공사관 대리공사 포트먼이 유일했다고 한다. 막부의 개항 의지에도 斥洋(척양) 분위기는 거셌고 외국인 암살이 끊이지 않아 슐리만의 에도 여행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에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인구 250만 명의 에도의 사회상과 경제에 주목했다. 일본의 물산과 외국과의 교역, 도로와 항만 상황 등을 눈여겨보고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 슐리만은 나가사키에서 에도와 하코다테로 이어진 960㎞의 도카이 가도를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도로로 꼽고 일본 곳곳에 잘 정비된 간선도로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근대 일본의 사회인프라를 서구 사업가의 눈으로 직접 보고 평가한 것이다. 140여 년 전의 일이다.

1981년 9월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은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나고야(名古屋) 대신 서울을 호명했다. 발표를 숨죽이며 기다리던 일본대표단의 긴 한숨과 함께 나고야는 우리의 뇌리에서 잊혔다. 그로부터 26년의 세월이 흘렀고 88올림픽도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그 후 나고야는 어떻게 되었을까. 1981년의 실패를 딛고 재도약을 위해 몸부림쳤다. 인구 700만 명의 나고야와 아이치현 지역사회는 지금 여수시가 개최하려는 세계박람회를 유치해 2005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일본 제3의 허브공항인 주부(中部)국제공항 건설 등 인프라 확충과 함께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일본의 산업중심지로 탈바꿈했다. 올림픽은 나고야의 절대 목표가 아니었다. 나고야를 축으로 한 중부권 발전을 위한 수단이자 과정이었을 뿐이다. 제2, 제3의 수단을 모색하고 야심찬 발전 전략을 밀고 나갔고 성공했다.

2005년 2월 문을 연 주부국제공항은 아이치현 도코나메(常滑)시 앞바다 인공섬에 세워진 공항이다. 매주 300여 편의 국제선 항공기가 전 세계 25개 도시를 운항 중이고, 일본 24개 도시에 국내선이 닿고 있다. 공항 인근에는 도요타자동차, 혼다기연공업, 소니'샤프 등 전자회사,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밀집해 국제항공화물의 거점공항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이처럼 신공항을 매개로 한 나고야와 인접 지자체 간 경제통합은 '그레이터 나고야(Greater Nagoya'中京圈)'라는 공동브랜드를 낳게 한 기폭제였다.

국토연구원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타당성 연구' 발표가 다음달 초로 예정돼 있다. 10년 전부터 대구경북, 부산경남, 울산 5개 지자체가 제각각 추진해오다 2005년부터 협력체제를 구축해 정부와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는 지역 현안이다. 하지만 인천공항을 끼고 있는 수도권의 견제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세계화'지방화 시대를 맞아 지역사회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제2의 관문인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나고야의 사례처럼 인구 1천300만 명의 동남권의 잠재력에다 완벽한 인프라 구축과 지역 간 경제통합, 특화된 산업 전략이 더해진다면 21세기 생활혁명을 이뤄낼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발전 토대를 엉뚱한 논리로 무시한다면 대한민국 재도약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단순히 여객수요나 따지고 있을 사안이 아닌 것이다. 전자와 자동차부품'에너지'조선'철강'기계'섬유와 서비스, 관광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 산업의 집적도를 높여나가는 전략의 핵심이 바로 신공항이다. 수도권 1극 체제에 고통받아온 동남권의 경제 활성화와 국제화 등 명운이 달린 일이다. 신공항이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徐琮澈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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