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적성과 성적의 갈림길에서

입력 2007-10-18 07:11:03

우수한 성적에 등 떠밀려 의대 지원…적성 포기 보상 기대…인술 베풀겠나

바야흐로 대학 입시의 막바지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택의 갈림길에서 '적성이야, 성적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고민도 깊어진다. '적성을 따르자니 성적이 울고, 성적을 따르자니 적성이 운다!'라는 현대판 심수일과 이순애의 절절한 울음소리도 덩달아 높아가는 시절이다. 한때 열풍처럼 번지던 의대 지원은, 의학전문대학원의 등장으로 수면 밑으로 짐짓 수그러들었다지만 아직도 의사가 되기 위한 열기만큼은 여전한 것 같다. 의학전문대학원 준비 학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더니만, 이제는 어엿하게 정규 대학 과정으로까지 개설이 된다 하니 말이다.

"온 동네방네 의사들이 의사 짓 더는 못해 먹겠다고 허구한 날 아우성인데, 방방곡곡 젊은 놈들은 멀쩡하게 잘하던 제 공부도 내팽개치고서 의대에 들어가지 못해서 또 아우성들이니, 이게 도대체 무슨 요지경이냐?"라던 친구 녀석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언뜻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런 일들이 실은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싶다. 제가 좋아서, 멋모르고 들어온 의과대학을 마치고서 맞닥뜨린 현실이 막상 제 성에 차지 않아서 생기는 실망감 정도야, 제 판단착오에 따른 밑지는 선택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우수한 '성적' 때문에 등 떠밀려서 젊은 날의 꽃다운 '적성'마저 뿌리치고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고달픈 과정을 견뎌내고서 손에 쥔 의사 면허증의 의미는 또 다를 것이다. 치열한 경쟁과 길고 긴 수련 과정을 이겨낸 불굴의 '성적'에 부응하는 대가에다가, 알뜰한 제 꿈까지 접고서 '적성'에도 맞지 않은 길을 택해야만 했던 눈물겨운 세월에 대한 보상까지 바라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스스로의 뜻과 다른 아우성으로 의과대학 문이 붐빌수록, 그 기대치에 어긋난 문 바깥의 진료실에서의 아우성 또한 높아지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우리네 세상살이가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나같이 힘겹고 불안하다는 현실을 모르쇠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우열을 따지는 '성적'이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각박한 오늘의 현실이라면, 자기만의 고유한 '적성' 또한 길고 긴 내일을 버텨갈 수 있는 든든한 현실이다. 그 잘난 '적성'이 배불리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우월한 '성적'에만 기대어 먹는 밥이 모두 달거나 속편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것이 비단 의사들 세상뿐이랴마는. 의사라는 존재가 단순히 규격화된 의료상품을 파는 세일즈맨이 아니라, 적어도 건강과 생명을 다룬다는 엄연한 사실과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는 현실에 우리네 고민이 있다. 이런 어긋난 만남이 개인적인 불운이나 고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칫 사회적인 불행이나 고통으로까지 번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예비 환자인 처지에서, 스스로가 기꺼운 마음으로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인술'(仁術)까지는 아니더라도, 갑갑한 제 마음도 추스르지 못한 채 환자들의 온갖 투정을 근근이 버텨내는 '인술'(忍術)만은 서로가 피해야 되지 않겠는가?

송광익(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