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추석과 중간고사

입력 2007-10-16 07:47:24

"삼촌! 시험 날짜를 왜 이렇게 잡아요?"

추석이라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형수님의 불만이 나에게 쏟아졌다. 조카가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데, 추석 연휴 끝나자마자 중간고사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시험 준비로 명절에 데려오지 못한 아쉬움과 시험기간 중에 식사도 잘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에 현직 교사인 시동생에게 불편한 마음을 터뜨린 것 같다.

올해부터 대입제도에서 내신 비중이 많이 높아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신 반영률이 50%라고 해도, 실질반영률은 4~20%까지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실질반영률을 30% 이상 올리라는 교육부의 방침으로 학교의 중간·기말고사가 더욱 더 비중이 높아졌다. 더구나 올해 입시에서 수능을 등급제로 반영하고 논술로 인한 변별력이 없다면, 내신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간고사를 제치고 명절에 참석하는 것이 형수나 조카로선 불가능했을 것이다.

"형수님, 그 학교는 왜 그런데요? 우린 10월 11일부터 치는데……."라며 학사일정을 그렇게 정한 그 학교의 탓으로 돌리면서 나의 책임을 벗어났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몇 해 전인가 추석 연휴 직후 중간고사를 치른 적이 있었다. 물론 내가 학사일정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학부모나 학생의 고충에 대해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한마디로 '학생들 너희들은 공부해라, 우리 선생님들은 쉴게.'란 교사 편의주의에서 비롯된 학사일정이라 반성의 마음이 생겼다.

일 년 중 가장 밝은 달을 볼 수 있는 추석은 농사를 수확하며 부모의 은혜, 조상의 은혜, 더불어 우주 만물의 은혜에 마음 깊이 감사를 올리는 날이다. 첫 수확한 햅쌀밥으로 송편을 곱게 빚고, 여름내 무성하게 자란 풀을 말끔히 벤 후 산소에 성묘도 하고 차례를 지내면서 가족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한다. 풍성한 먹을거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혼자 끼니를 해결하면서 시험을 준비하는 조카의 처지가 안쓰러워 내 잘못인 양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손삼호(포항제철고 교사 sam35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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