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유학 떠나볼까?

입력 2007-10-11 16:37:38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따라가는거죠. 학교 다녀와서 무작정 놀게 하고 싶어도 함께 놀 친구가 없습니다. 게다가 또래 아이들은 영어, 논술, 수학에다 미술, 창의성까지 배우는데 우리 아이만 뒤쳐지게 할 수 없잖아요."

주부 최모(35) 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영주(가명)를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온다. 5살 때부터 아파트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한글을 깨치기 시작하면서 영어를 따라했고, 셈하기를 배우면서 동시에 한자(漢子)도 익히기 시작했다. 제법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던 영주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앞선다고 뿌듯해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많지는 않지만 매일 학교 숙제가 나오고 글쓰기, 영어 단어 외우기, 수학 문제집 풀이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엄마의 도움으로 매일 숙제는 빠뜨리지 않고, 영어와 수학도 꾸준히 해내고 있지만 최 씨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아이가 가끔씩 "엄마, 힘들어. 그냥 좀 쉬면 안돼?"라고 투정을 부릴 때마다 달래기도 하고 따끔하게 나무라기도 하지만 억지로 끌고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얼마 전부터는 제 때 학습량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아이를 닥달하기 시작했고, 가끔 분을 못이겨서 나무랄 때면 마치 죄인 다루듯 윽박지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런 처지가 속상해 혼자 울기도 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학원이며 방문학습을 대폭 줄여볼까도 생각했다. 문제는 남는 시간동안 아이가 혼자서 놀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몇달 전부터는 주말을 이용해 농촌체험을 찾아다녔다. 비용도 제법 부담스러웠지만 적어도 주말동안 영주는 모든 걱정을 잊고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초등학생이 무슨 스트레스가 그렇게 많냐고 하겠지만 곁에서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아이는 부모 때문에, 부모는 경쟁적인 주위 환경 때문에 떠밀려서 그렇게 사는거죠. 하루하루가 전쟁입니다. 예전에 우리 어렸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중학교 1학년 아들 승찬이(가명)를 둔 주부 하모(45) 씨도 공부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중학생이 되면서 남편보다 귀가 시간이 늦는 날이 더 많아졌다. 이르면 밤 8시가 넘어서야 집에 오는 아들은 늦은 저녁을 먹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잠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이 제 방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시작한다. 매달 학원비에다 영어 과외비로 수십만 원이 들어가지만 성적은 중위권을 맴돌고 있다. 핼쓱한 모습으로 잔뜩 지쳐서 돌아온 아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닥달할 여력도 없다. 학교에서 수업은 제대로 듣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학교 사물함에 교과서며 공책을 넣어두기 때문에 필기를 제대로 하는지도 모른다. 또래 부모들이 과목별 '수행평가'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아이에게 물어보면 "아, 몰라. 다 했으니까 자꾸 묻지마!"라며 짜증만 낼 뿐이다.

갈수록 말수도 적어지고, 가끔 공부에 대해 묻기라도 하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춘기를 겪는가보다 싶어 가만히 내버려두고 싶지만 자꾸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쳐지는 것 같아 불안함을 지울 수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해도 저러지는 않았는데. 하 씨네 집은 승찬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군위에서 대구로 이사를 왔다. 면 소재지 학교에 다니느라 과외는커녕 학원 한 번 다닌 적이 없었다. 하 씨는 그 때의 아들 모습이 그립다. 하루 종일 뛰어놀고 집에 와서는 미주왈고주왈 부모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기 바빴던 그 모습이.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