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

입력 2007-10-09 09:22:42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던 후배는 짝을 만나지 못하다가 몇 해 전 필리핀 아가씨와 국제결혼을 했다. 오랫동안 아기울음이 끊겼던 고향마을에서 국제결혼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직도 고향에는 미혼인 필자 또래들이 국제결혼을 바라고 있어 앞으로 다문화가정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교적 전통이 엄존하던 집성촌에서 오랫동안 의식을 지배하던 순혈주의의 무게에 눌려 마흔을 넘긴 노총각들은 부모에게 국제결혼을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모들은 농촌총각과 결혼을 기피하는 결혼풍토로 아들들이 총각귀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서 고향사람들도 바다 건너 낯선 곳으로 시집 온 나이 어린 외국인과 그 소생의 아이들을 살갑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향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우리 사람으로 대하더라도 그들이 겪는 고통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시골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영유아기를 무탈하게 보내더라도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새로운 차별과 시련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2006년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남자들 중 8천596명이 결혼했고, 그 중 41%인 3천525명이 다문화가정을 꾸렸다고 한다. 2007년 행정자치부 발표에 의하면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은 72만 2천686명으로 주민등록인구의 1.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멀지 않아 농어촌 초등학교는 다문화가정 출신들이 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통계로 확인할 수 없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까지 포함한다면 미래세대를 구성할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혼혈인 아이들이 급속하게 늘어가고 있지만 이들을 통합시키기 위한 우리 사회의 의식과 정부의 정책은 미흡하다. 아직도 학교에서 유구한 오천 년을 이어오면서 피부색과 언어가 같은 단일민족, 배달민족을 가르칠 때 친구들로부터 의아한 눈길을 받으면서 혼혈인들은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그들은 태어나고, 자란 익숙한 이 땅이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좀 더 커서 제도적인 차별과 사회적인 냉대를 경험하면서 좌절하고, 절망할 것이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발표에 의하면, 국내 혼혈인의 42.2%가 지속적인 차별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좌절과 절망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고통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세계화과정에서 지속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 이주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좀 더 진지하고, 장기적인 대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단일민족의 전통을 강조하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것은 교육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다문화가정을 우리 사회에 통합시키는 일은 인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들을 고된 노동을 대체하는 부속품으로 바라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 자녀들에게 비록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과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2개국의 언어, 문화를 습득할 수 있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사회의 소중한 인적자원이기도 하다. 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일민족국가론에 대한 교육이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주외국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교과과정에 포함시키고, 다문화 가정에 대한 외국어교육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통합교육정책이 실시되고 있고, 국가와 민족, 인종, 피부색 등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나아가 다문화가정, 외국인 문제를 다룰 국가의 통합기구가 설치되길 바란다.

그래서 하인즈 워드, 다니얼 헤니 등 성공한 혼혈인들만 대접받는 사회가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 혼혈인들도 '우리 사람'으로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시절 하와이, 멕시코의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로, 독일의 광부와 간호사로 이민을 떠난 사람들과 일본에 남아 있는 재일교포들, 구 소련땅과 연해주를 떠도는 고려인들도 이주외국인들과 같은 처지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참다운 민주사회는 소수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이다.

남호진(변호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