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스릴도 있는 법" 은해사 주지 법타 스님

입력 2007-10-08 09:01:36

"마음고생이 크지 않았느냐?"는 인사에 "살다 보면 스릴 있는 만남도 있어야지."라고 답했다.

지난달 20일 영천 은해사 주지 법타(61) 스님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대구지법 형사 1부(부장판사 김태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2천만 원을 선고했다. 법타 스님은 지난 2005년 사찰 공사와 관련해 공사비를 과다 계상하는 방법으로 1억 9천500여만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법타 스님은 아직도 그 충격을 잊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는 정말 대한민국에 살고 싶지 않았다."는 말까지 했다. 당시 "공사비를 아껴 불사에 쓴 것은 관례였다."며 "절이야 기독교처럼 헌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대중이 절에 자유롭게 드나들려면 절이 여유가 있어야지."라고 했다. 문제를 제기한 일부를 염두에 둔 듯 "쥐를 잡으려면 장독은 깨도 좋다는 불가의 수행자답지 못한 이기적인 사고도 한몫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이번 사건으로) 주지로서 관례보다 실정법에 맞도록 해야 되겠다 생각했다."며 "대내외적으로 신망을 받을 수 있는 성직자로서 자기 수양과 관리가 절실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검찰에 대한 섭섭함도 드러냈다.

"억지로 구속시킨다고 능사는 아니다."며 "법의 운영의 묘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신정아 사건도 억지로 구속시키려고 (검찰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특별교부세라는 것이 가만히 있어 주는 것도 아닌데, 마치 세금도둑처럼 몰아가는데 이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작은 파도를 쓰나미로 몰아가는 언론도 문제"라고 비난하며 "창간호부터 구독하던 모 신문도 누드사진 파문으로 끊었다."고 했다.

법타 스님은 수행하는 이판(理判)보다 참여에 무게를 둔 사판(事判)에 더 어울리는 스님이다. 실제 그는 시민운동가에 통일운동가에 더 가깝다.

그는 1989년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평불협)를 창립해 6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동포돕기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 1998년부터는 북한 사리원시에 금강국수공장을 설립해 10년째 매일 7천700그릇의 국수를 마련해 인근 병원과 유치원, 학교 등지에 점심 급식을 해오고 있다.

매달 30~60t의 밀가루뿐 아니라 치약, 칫솔, 러닝셔츠, 팬티에 심지어 생리대까지 보내주고 있다. 월 2천만 원이 넘는 비용. 통일부에서 절반을 보태지만, 회원의 회비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다. 1만 4천여 명 중에서 회비를 내는 회원은 10% 정도. 그것도 남북이 긴장하면 회비도 잘 걷히지 않는 편이다.

요즘 법타 스님은 월 5회 정도 특강과 설법을 한다. 그는 "우리 돈 1만 원이면 북한 사람 둘이 한 달을 산다."며 "부지런히 강연 다녀 번 돈도 거기 다 들어간다."며 웃었다.

그래서 지난 3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은 그에게 남다른 감동을 던져주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깜짝 놀랄 만한 일은 없었지만 실질적인 것에는 어느 정도 접근했다고 본다."며 "노 대통령이 4년 반 동안 욕만 얻었는데, 이것 하나는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환영했다.

그러나 "합의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실천이 더 중요하다. 배고픈 사람한테 밥 주는 것이 부처고 하느님이다. 북한을 경제 발전시키는 것이 통일정책의 기본"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구·경북 경제통합도 이렇게 힘든데 남북 경제협력이 쉬운 일이 아니다."며 "대의를 위해 기득권을 버리는 마음이 절실한 때"라고 진단했다. "내가 밑지는 것은 절대 양보하지 못하는 세태가 아쉽다."며 "소탐대실(小貪大失)은 동물적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돼야 함께 공존하고, 공영하는 길이지. 요즘은 불교의 '인연'에서 연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어떻게든 함께 보듬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말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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