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문의 펀펀야구] 그라운드의 엽총

입력 2007-10-05 09:37:41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갖는다고 해서 '그라운드의 엽총'이라 별명이 붙여졌던 삼성 라이온즈 전수진 전 사장. 그가 부임한 1996년 10월은 경산 볼파크에 80억 원을 투자, 동양 최고의 야구 연습장으로 꾸미고도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때여서 그 어느때보다 돌파구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부임 첫해에 백인천 감독이 뇌출혈로 중도 하차했고 천신만고 끝에 쌍방울을 꺽고 플레이오프까지는 이르렀지만 LG에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이 무산되었다. 그 해, 해태타이거즈는 LG를 꺽고 96년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고 9번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9번 모두 승리해 모든 구단의 부러움과 질투를 함께 받고 있었다.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했던 전수진 사장은 자신의 임기중 기필코 우승을 이룰 것을 다짐했다. 그가 가장 먼저 염두에 둔 것은 '해태는 어떻게 해서 매번 우승을 하나?'였다. 그리고 내린 답이 '우승은 해본 사람이 아는 것'이었다. 그는 즉각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서정환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한 것이 그 시발탄이었다. 그리고 이만수가 은퇴를 했고 조계현이 왔다. 이듬해인 1998년 용병제도가 도입되자 삼성은 투수력에 모든 촛점을 맞췄고 호세 파라와 스콧 베이커가 활약, 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그러나 또다시 LG에 패해 그가 부임한 후 두 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이 무산됐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던 전수진 사장은 이번에는 대대적인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양준혁과 임창용의 맞트레이드였다. 한화에서 노장진을 데려왔고 쌍방울에서 김기태와 김현욱도 데려왔다. 두산의 에이스였던 김상진도 가세시켰다. 그가 '그라운드의 엽총'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반드시 우승'이라는 의지 아래 올인했던 그 해, 1999년에도 매직리그 1위는 차지했지만 롯데에 3승4패로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이 또 다시 무산됐다. 전수진 사장은 후퇴하지 않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계약기간이 끝난 김응용 감독을 스카웃했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발상이었지만 우승을 위한 그의 집념은 마그마처럼 거칠 것이 없었다.

이미 서로의 마음이 정해져 발표만 남겨두고 있었으나 김응용 감독은 삼성행을 택하지 않았다. 김 감독이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홀로 있을 때 흔쾌히 발탁해 준 박건배 해태 구단주와의 의리 때문이었다. 전수진 사장도 김응용 감독의 입장과 마음을 깊이 이해했다. 그러나 그 스스로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다.

김응용 감독은 이듬해 삼성 라이온즈 사령탑을 맡았고 2002년 우승으로 숙원을 풀었다. 삼성 라이온즈는 전수진 사장이 부임하던 해부터 11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대업적을 쌓았다.

오로지 우승이라는 목표로 외길을 걸었던 전수진 사장은 당시 연고팬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11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의 터전을 일군 그의 행적은 언젠가는 비난의 무덤에서 다시 태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