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명박의 선택은?

입력 2007-10-05 09:45:42

남북선언 실천은 차기 정권 몫…李후보 통일 외교 공약 밝혀야

임기가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이 2박 3일간 북한을 방문해 '2007 남북정상선언'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동행 취재하면서 필자는 내내 '전략가 노무현'을 생각했다.

노 대통령은 평양으로 떠나기 전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했다. 레임덕에 걸린 권력을 북한이 가볍게 볼 경우 정상회담 성과가 미미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제기될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고자 미리 방어막을 친 셈이다. 또 그는 "현 정부가 어음을 끊으면 차기 정부가 결제해야 한다."는 말도 미리 했다. 북한으로부터 정상회담 상대로서 권위를 인정하게 하고, 차기 대통령에게 부담을 지우는 양수겸장 격이다.

3일 남측 수행원과의 옥류관 오찬에서 북한을 배려하는 발언을 한 것이 '전략'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는 정말 승부사다. 그는 이날 "우리는 개성공단을 '개혁과 개방의 표본'이라고 얘기하는데 우리 식 관점에서 우리 편에게 얘기한 것으로 북측이 볼 때 역지사지하지 않은 것이었다. 개성공단의 성과를 얘기할 때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는 용의주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전날 회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이날 오전 1차 회담에서 이 부분이 회담 진전에 큰 걸림돌이었던 모양이다.

옥류관에는 당시 북측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해 노 대통령의 의도대로 이 발언이 김 위원장에게 즉각 전달되었을 공산이 크고 이 때문인지 오후에 속개된 2차 회담에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2차 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표정이 오전과 달리 무척 밝아졌다."고 전했다.

전략가 면모의 압권은 4일 귀국보고회다.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비판을 귀국보고에서 사전 차단해 버리고, 대선 주자에게 선택을 압박했다. 한나라당이 요구했던 '북핵 폐기 논의'는 '선언'에 담겼고, 서해북방한계선(NLL) 재설정 논란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로 자연스레 덮었다. 경협은 양국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김 위원장에게 설명했다며 '퍼주기 논란'도 잠재웠다. 또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는 대화를 했으나 입장차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국민에 대한 사과로 대신했다.

그리고 "이번 선언이 대선에서 특정 정당과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게 아니다."며 특유의 논법을 펼쳤다. 합의가 잘못되었다면 반대하고, 잘되었다면 찬성하는 것이 유리한 것이지 합의 자체에 유·불리가 없다는 논리다. 다시 말하면 내가 생각할 때는 아주 잘한 합의이니 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찬성하라고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말을 할 때 노 대통령은 어떤 당 어떤 후보를 머리에 그렸을까? 아마 현재 국민 지지도가 가장 높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일 게다.

노 대통령 말대로 이 후보가 '선언'에 찬성하면 정말 불리하지 않을까? 최소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경선후보의 참모를 맡고 있는 민병두 의원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그는 한 토론회에서 "정상회담으로 '평화'가 의제가 되면 범여권 후보 지지도가 5% 정도 오른다."고 주장했다. 전략가인 노 대통령도 내심은 민 의원의 말에 동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싫든 좋든 이제 이명박 후보 차례다. 지지도가 가장 높아 국민들 대다수가 이 후보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언'의 내용이 알려지자마자 한나라당과 이 후보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평양 프레스센터의 논의의 핵심이 됐다. 비슷한 시각 한 방송은 아나운서가 "차기 정부에 별 부담이 안 되겠다."고 스태프와 대화하는 방송 사고까지 냈다.

이 후보는 노 대통령이 평양으로 떠나기 전날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해 통 큰 모습을 보였다. 비슷한 입장을 밝혔던 한나라당은 4일 선언에 대해 '미흡한 성과'라고 논평했다. 5일이면 이 후보도 입장 표명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이 되려고 하고, 현재 국민들로부터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라면 찬성이냐 반대냐에 대한 입장 표명으론 부족하다. 자기 나름의 큰 그림이 있어야 하고, 이를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남북 관계는 차기 정부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남북 관계는 나아가 미·일·중·러 등 주요국 관계와도 연관된 문제라 정제된 그림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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