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 '나홀로族' 확산

입력 2007-09-15 07:06:35

나는 혼자 논다 고로, 자유롭다

▲ 자신의 여가시간에 혼자만의 활동을 즐기는
▲ 자신의 여가시간에 혼자만의 활동을 즐기는 '나홀로족'이 늘고 있다. 대구시내 커피전문점에서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여행하기, 혼자 영화보기, 혼자 쇼핑하기…. 혼자니까 오히려 편해요."

자신의 여가시간을 이용해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는 '나홀로족'이 늘고 있다. 이들은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집단생활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자기만족과 즐거움을 얻는다. 그래서 일본의 '히키코모리'처럼 사회적 문제가 되는 은둔형 외톨이와는 다르다. 최근 20, 30대 대학생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나홀로족이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혼자가 좋아요

대구시내 한 커피전문점. 이젠 이곳에서 혼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하지만 전과 달리 이들을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의식하는 사람은 없다.

직장인 이재진(31·대구시 남구 대명동) 씨는 나홀로족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점심 때 회사 근처에 있는 커피전문점으로 책과 MP3플레이어를 들고 간다. 매일 보는 동료들과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기보다 평소 읽지 못했던 소설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점심은 샌드위치 등으로 간단하게 먹는다. 이 씨는 주말에는 문화공연과 영화를 보고, 스포츠도 주로 혼자서 즐긴다. 이 씨는 "친구와 만나면 서로의 일정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다."면서 "예전엔 커피점에서 혼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여겼지만 요즘엔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 눈치 안 보고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개인 여가시간을 혼자서 한적하게 보내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인터파크 조사에 따르면 라이브콘서트에 가기 위해 표를 1장만 예매한 고객 비율이 2005년 12%에서 2006년 15%로 늘었다. 뮤지컬 1인 예매고객도 8%에서 10%로 증가했다.

나홀로족은 결혼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싱글족'과는 개념이 다르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혼자서 여유를 즐기는 나홀로족이 많다.

회사원 김기헌(43·대구시 동구 방촌동) 씨는 가족이 있지만 주로 혼자서 여가를 즐긴다. 김 씨는 퇴근 뒤 집 근처 재즈바를 혼자서 찾는다. 바에 혼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좋아하는 재즈음악을 듣고있으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김 씨는 "혼자서 술을 마시면 과음도 않고 비용도 적게 든다."고 말했다.

요즘 대학가에서도 혼자 생활하는 것을 즐기는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휴대용게임기, PMP, MP3플레이어 등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디지털기계가 발달한 것도 나홀로족의 증가 이유다. 대학생 김진석(25·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씨는 "예전에는 친구가 없거나 외롭게 보이기 때문에 혼자서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면서 "하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혼자 다니니까 이젠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나홀로 여행 더 편해요

회사원 김보현(37·대구시 달서구 감삼동) 씨는 지난달 2박 3일 동안 혼자서 일본 도쿄를 여행했다. 부인과 아이를 집에 두고 혼자만 떠난다는 말에 주변에서는 의아해했다. 김 씨는 "아이들이 더 크면 함께 떠나자고 부인과 약속했다."면서 "부인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라고 허락해줬다."고 말했다.

최근 혼자 여행을 즐기는 '나홀로 여행족'들이 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국민해외여행실태조사'에 따르면 나홀로 해외여행족은 2005년 13.6%에 불과했지만 지난 3월 현재 22.5%로 늘어났다. 또 나홀로 여행족은 국내 관광에서도 증가추세다. 나홀로 국내여행족의 비율도 2004년 12.0%, 2005년 12.9%, 2006년 13.4%로 꾸준히 늘고 있다.

나홀로 여행족이 증가하는 것은 단체여행의 빡빡함이나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반자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일정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도 다른 사람 눈치볼 것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 인터넷과 각종 여행서적을 통해 여행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한 이유다.

김진영(29) 여행박사 일본영업팀장은 "전체 여행객 중 나홀로 여행족 비율은 지난해 10%에서 올해 15%로 늘었다."면서 "20, 30대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많지만 40, 50대 직장인도 나홀로 여행을 많이 예약한다."고 말했다.

글·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나홀로(코쿤)족, 글루미 제너레이션=원래 누에고치를 뜻하는 '코쿤'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코쿤족을 다른 말로 하면 '나홀로족'이라고도 한다. 나홀로족은 결혼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싱글족'과는 다르다.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보고, 혼자 노는 것을 즐기는 세대를 말한다.

'글루미 제너레이션'도 주요한 트렌드 용어로 떠오르고 있다. 글루미 제너레이션은 우울한 세대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우울함을 자학하는 대신 우울함 자체를 즐기고 그것을 감추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는 새로운 세대다. 우리말로는 '우울한 세대'보다는 오히려 '나홀로족' 정도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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