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관련 사안들에 대한 여론의 달고 식기가 냄비 같다고들 하지만 논술을 보면 아무래도 좀 심한 듯하다. 온 나라를 뒤집어놓을 듯 광풍(狂風)이 불더니 어느새 관심에서 멀어졌다. 수능우선선발전형이다, 내신 실질반영비율 확대다 몇 가지 발표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렸다.
얼마 전에 만난 한 고교생 학부모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몇 달 동안 논술 그룹과외 시키고, 언어영역 학원 보내고 난리를 쳤는데 다 쓸모가 없게 됐다. 논술을 가장 중시하는 고려대가 수능은 최대 132점 차이 나도록 하면서 논술은 고작 5점 차이를 뒀다면 말 다 한 거 아니냐."는 거였다. 실제로 고려대의 2008학년도 정시모집 전형요소별 실질반영비율은 최근 내신 17.96%, 수능 79.04%, 논술 2.99%로 결정됐다.
교육부와 대학의 숫자놀음과 말장난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 학부모들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참으로 걱정스러운 건 논술을 대하는 학부모들의 태도다. "어릴 때부터 책 많이 읽히고, 많이 써 보게 하면 되죠. 통합형 논술은 여러 교과목을 엮는 거니까 교과 공부 열심히 시키면 되고요." 논술에 대해, 통합논술에 대해 알 만큼은 안다는 투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가정에서,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자녀교육에서의 역할을 학교에게, 학원에게, 과외선생에게 모두 떠넘겨버린 부모는 냄비의 바닥이다. 불을 때면 금세 달아야 하고, 끄면 이내 식어버린다. 스스로 불을 켤 줄도, 끌 줄도 모른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우선 자녀가 살아가야 할 지식기반사회가 어떤 능력을 요구하는지, 무엇을 물려줘야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볼 일이다. 논술이 왜 필요한지, 대학이 무엇 때문에 통합형 논술을 강조하는지에 대한 대답도 따져봐야 한다. 나아가 통합형 논술에 대해 서울대가 제시한 네 가지 핵심 내용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 서로 다른 교과 간의 소통, 자기주도형 학습이 하나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쯤 되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지도 모르겠다. 생업과 살림살이에 녹초가 된 부모들에게 무리한 요구 말라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통합형 논술 학습의 출발점이 가정이라는 사실만은 강조해야겠다. 어려울 것도 없다. 자녀와 같이 신문을 보고, 세상살이를 이야기하며, 책을 읽은 감동을 나누고, 어떤 문제건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밝히게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함께 한다는 진지함만 놓치지 않는다면 어떤 일류 강사도 따라올 수 없다.
2001년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칼 와이먼의 말을 곱씹어 보자. "과학도 사회적 활동이다. 남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을 개발해도, 다른 사람에게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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