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린이와 연예인들이 한 팀이 되어 문제를 푸는 TV의 퀴즈 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어른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고 어린이 혼자 문제를 푸는 순서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고 하는데, 첫 번째는 나라가 망했을 때이고 두 번째는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이다. 남은 한 번은 언제일까?' 답은 '태어났을 때'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자신이 '태어났을 때 운 일'을 좀처럼 기억해내지 못했고 문제를 맞힌 어린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는 말은 일단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한 번만 우는 사람이 있을 리 없고 부모가 동시에 돌아가셔서 남자의 울음을 한 번으로 맞춰준다는 보장도 없다. 남자가 죽을 때까지 나라가 안 망하면 세 번 운다는 통계적 진실에 어긋나게 되니까 나라가 망하기를 빌어야 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그만큼 남자의 울음이 무거운 것이고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은 일생에 몇 안 되는 표지판이 될 정도로 드물다는 뜻일 것이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는 식의 속언이 통용되는 사회에는 남자의 눈물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분명히 있다. 가부장적인 전통 속에서 남자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모습은 좀체 보기 힘들다. 그런 사회에서는 남자의 울음을 고도로 형식화하고 문자화하여 '哭泣(곡읍)'이라고 부르는 식이지 실제로는 나올 눈물도 멈추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대의 남자들이 과거에 비해 눈물선이 발달했다는 증거는 없다. 걸핏하면 울고 혼자 조용히 우는 경우가 늘어났을 수는 있지만 남자가 평생 세 번 눈물을 보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근래 공공연히, 衆人環視裡(중인환시리)에 우는 남자를 수시로 본다. 비위사실이 발각되거나 물의를 일으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머리가 반백인 고위 공직자가 퇴임식에서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 누르는 일을 보는 것은 지겨울 정도다.
선거에서 진 후보가 운다. 대선 후보도 마찬가지다. 대선에서 이겨서 대통령이 되어서도 운다. 군인도 운다. 제갈량의 '泣斬馬謖(읍참마속)'을 고사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실제로 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철석간장의 사령관들조차 부하를 잃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건 여자건 막 태어났건 백수를 누린 사람이든 슬플 때, 눈물이 나올 만한 정황에서 우는 건 자연스럽다. 갓 태어나서 우는 울음은 때묻지 않은 천진성을 의미한다. 나라가 망해서 우는 울음은 충정과 단심을 상징한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우는 울음은 효에서 비롯된 비통함과 슬픔의 표현이며 그의 인간 됨됨이가 순정함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울음과 눈물은 인간적이고 대의에 충실하며 솔직·순수하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다른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데 감동하여 같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울음에 共鳴(공명)하는 감정은 근본적으로 선량한 심성에서 나온다. 함께 울고 눈물을 흘리다 보면 정화(카타르시스)의 효과를 경험하게 되고 그에 따라 그 원인을 제공한, 그러니까 먼저 울어서 자신을 감동시킨 사람에 대해 호의를 가지게 된다. 논리를 뛰어넘어 순식간에 동질감을 얻게 만드는 데는 웃음보다 눈물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러니까 이 눈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불리한 선거 판세를 눈물로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안다. 이를테면 공인으로서 대중에게 뭔가를 속였다, 잘못했다고 물 끓는 듯한 비난을 받다가 풍성한 울음소리와 눈물을 동반하여 잘못을 고백함으로써 오히려 동정을 받아낸 사례도 많다. 다급할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때 가지고 있는 무기, 아는 것을 써먹고 싶어질 것은 자명하다.
눈물을 이용하는 자들을 경계할 때가 되었다. 자신의 이익과 성공과 승리, 합리화를 위해 눈물을 쏟는 사람들은 시속이 어지러워질수록 많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여기서 울고 저기서 눈물을 흘려가며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은 특히 정서적인 파급효과가 빠른 인터넷과 화면을 타고 횡행한다. 실력이나 노력에 의한 결과가 아닌 남자의 눈물 그 자체의 효과를 누리려고 하는 흥행사, 연기자들이다.
그 눈물에 또다시 속절없이 공명해 주기 전에 잠시만 기다리자. 눈물은 언젠가 그치게 되어 있고 또 언젠가는 마르게 되어 있으니 그 뒤의 맨얼굴을 확인한 뒤에 용서, 용인해 주어도 늦지 않다. 뜨거운 계절, 시곗바늘이 핑핑 빨리 도는 시절일수록 눈물은 빨리 마르는 법이다.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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