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동해선 타고 로마에 가고 싶다

입력 2007-08-10 10:22:59

8·28 제2차 남북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경의선 열차를 타고 평양에 간다고 한다. 남측 도라산역과 북측 개성역은 철도 연결공사가 끝난 상태이고, 개성에서 평양까지 북측 열차로 갈아타고 가는 것이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경의선 방문이 성사되면 고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에 버금가는 새로운 역사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경의선을 탄 노 대통령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한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이 감격으로 가슴 벅찰 것이다. 특히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들은 꿈에 그리는 고향이 성큼 눈앞에 다가오는 환각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지리부도로만 북한 지명을 아는 戰後(전후) 세대는 다소 생경하겠으나 북한을 마음대로 여행하는 묘한 상상에 젖을 수도 있다.

우리의 상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확장된다. 배낭을 메고 디카를 들고 한 달 여정의 유럽행 철도 여행에 나서는 젊은이들을 서울역에서 심심찮게 만나는 상상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러한 상상의 현실화가 불가능한 것도, 아주 먼 장래의 일도 아닐 듯하다. 북한의 철도 현대화만 이뤄지면 한반도종단철도(Trans-Korean Railway·TKR)가 완성되고, TKR과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또는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되면 남는 것은 당사국들의 여행자 안전 보장을 위한 각종 조치뿐이다.

실제 정부도 노 대통령의 열차 방북에 맞춰 TKR과 TSR·TCR을 연결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鐵(철)의 실크로드' 구상이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TSR·TCR과 연결하는 TKR 노선이 경의선이냐 동해선이냐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경의선은 TCR과 동해선은 TSR과 연결하는 방안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 아니 어쩌면 동해선과 TSR의 연결을 우선 추진하고, 그 다음에 경의선과 TCR의 연결을 추진해야 유럽행 기차여행이 하루라도 빨리 현실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과 러시아의 움직임을 보면 그렇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8월 TKR-TSR 연결을 위한 논의를 했다는 소식이 당시 외신을 통해 국내에 전해졌었다. 물론 동해선의 한 역인 나진을 통한 연결 구상이다. 이후 북한과 러시아는 나진과 하바로프스크를 연결하는 용역에 이미 착수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과 러시아의 생각과 달리 경의선을 통한 연결을 우선 생각할 것이다. 이를 서울 중심적 思考(사고) 때문이라고 굳이 탓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경의선 주변에 있는 군사 요충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북한의 입장을 우리 정부 당국자는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지금처럼 중국 무역 의존도가 너무 커지는 것은 무역 안정성을 위해 바람직스럽지 않으므로 시장 다변화 전략 차원에서 동해선과 TSR을 우선 연결해 러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큰 구상도 요구된다.

동해선 활용은 더욱이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과도 맞아떨어진다. 경의선 통과 지점은 부산·대구·대전·서울 등 대도시가 즐비하지만 동해선 통과 지점은 동해·삼척 등지 奧地(오지)다.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4대 정권째 이어지고 있는 '서해안 시대 또는 서·남해안 개발 구상', 'L자형 국토개발 구상'에서 빠진 동해안이 20여 년째 소외감에 젖어 있다는 얘기는 굳이 들먹이고 싶지 않다. 다만 동해선을 통해 '철의 실크로드'가 시작되면 삼척, 묵호, 포항, 울산, 부산 등지 항구와 북한 나진항 간의 海路(해로) 연결도 자연스레 부상해 동해안 주민들이 '환태평양 시대'의 중심 지역으로 거듭나리란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정부 당국자는 절대 看過(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철의 실크로드'에 우리의 철도 동맥을 전략적으로 연결한다면 한국이 2030년 국민소득 세계 3위가 되고, 2050년에는 2위가 되리란 다소 황당한(?) 골드만삭스의 장기 전망이 전망에 그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세계 3대 시장 가운데 EU와 동북아 등 2대 시장을 철의 실크로드로 하나로 묶는 일이다.

10년 후 동해선을 타고 TSR을 거쳐 파리에 가보고, 15년 후 경의선을 타고 TCR과 TMGR(몽골 통과 철도)을 지나 로마에 가보고 싶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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