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노트를 훔치다/로랑 티라르 지음/조동섭 옮김
오래전에 정일성 촬영감독과의 인터뷰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내가 몸담고 있던 곳에서 한국 영화인들을 '오럴 다큐멘터리(인터뷰 다큐)'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을 때다. 정일성 감독의 영상 미학이야, 임권택 감독의 수많은 영화를 통해서 증명된 바 있고 나 역시 그의 카메라가 빚어낸 화면을 아주 좋아한다. 놀라운 것은 인터뷰를 통해서 들었던 예술에 대한 그의 자세와 삶의 철학이 그가 만들어낸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대가들은 예술에 대한 생각과 작업의 결과물이 일치시킬 줄 안다. 물론 그러니까 우리가 그들을 '마스터'라고 부르는 것이겠지만.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영화감독인 로랑 티라르가 쓴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를 읽는 동안, 정일성 촬영감독 생각이 자주 났다. 자신의 영상 철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유머와 재치, 멋을 잊지 않았고, 우문에도 현답으로 받아치는 노련함도 보여줬다. 인터뷰를 마치고는 그의 손길이 닿은 영화들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역시 대가들에게는 통하는 그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이 책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20명과의 인터뷰를 1인칭으로 써내려간 책이다. 마틴 스코시즈, 우디 앨런, 페드로 알모도바르, 왕가위, 데이비드 린치, 기타노 다케시, 그리고 장 뤽 고다르까지, 영화팬이라면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댈 거장들을 저자는 일일이 만나서 그들에게 거침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밝힌 영화미학과 영화제작현장의 경험들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스무명의 영화감독들이 그들의 영화만큼이나 다양한 생각을 갖고있다는 것이고, 그들의 말은 각자의 영화와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디 알렌은 시니컬하면서도 유머가 넘치지만, 결국엔 해야할 말을 명확하게 몇줄로 요약한다. 시드니 폴락은 어떤 감독보다도 배우들과의 교감을 중요시하고, 존 부어맨은 반복촬영을 절대 하지 않지만, 끌로드 소떼는 좋은 화면이 나올 때까지 다양한 시도를 한다.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정면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측면이나 뒷면 혹은 뒤집어 보는 사람들이 있듯이, 영화감독들 역시 그렇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보면 영화 조언서인 동시에, '삶에 대한 우리의 시선과 자세에 대한 이야기구나' 싶어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즐거웠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내공을 쌓은 마스터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 같아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느낀 것은 아주 단순했지만, 심오했다. "결국 예술은 하나의 길로 통하고, 도착점은 같다는 것."
이진이(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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