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이혼 지침서

입력 2007-08-02 14:13:46

책이름만 보면 이혼에 대한 상당한 정보가 담겨있는 듯 하다. 그래서 이혼하고자하는 독자는 요긴한 지침서일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이혼을 위한 비결도, 원만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대책도 없다.

두 살짜리 아들을 둔 평범한 샐러리맨 양보는 어느 날 아침, 이렇게 선언한다. '나 이혼할래!'. 부스스 침대에서 빠져나와 아침 준비를 하던 아내는 남편의 말을 못 들은 것인지, 들었지만 못 알아들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남편의 말을 흘려들은 아내는 아침 반찬거리를 사러 밖으로 나간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양보는 '이혼하겠다.'는 의사를 다시 밝힌다.

아내는 남편의 뜬금없는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남편은 이전부터 이혼을 오래도록 생각해왔다고 말한다. 이혼의 길은 멀고도 멀다. 아내는 절대로 이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내는 "이혼을 원한다면 돈을 내라."고 요구하지만 말뿐이다. 남편은 아내가 요구하는 거금을 준비하지만 아내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는 남자, 양보는 비루하고 난처한 날들을 보낸다.

남편 양보가 이혼을 요구하는 이유가 애인 때문이라는 점은 아쉽다. 자식까지 둔 남자가 애인 때문에 이혼한다는 설정은 너무 단순하다. 특히 소설에서 이혼은 무척 힘든 일인데, 이혼하고자하는 이유는 너무 단순해서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중국인들의 이혼이 애인 때문에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이혼을 위한 한가지 방법이 소개 돼 있기는 하다. 주인공 양보가 철학자 라오진을 찾아가 알아낸 방법이다. 라오진은 이혼에 두 번이나 성공한 경험이 있다. 라오진은 주인공에게 '머리를 써라.'며 이렇게 조언한다.

"(내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 내 전처는 하마터면 미칠 뻔했어. 나도 꽤나 무서웠지. 그래서 내가 무슨 수를 썼는지 알아? 내가 먼저 미쳐버렸어. 전처가 정말 미치기 전에 먼저 미쳐버렸지. 매일 집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웃다 울다 했지. 전처의 치마를 입고 거리에 뛰쳐나가 자동차 앞으로 달려들기도 하고. 내가 먼저 미치니까 그녀는 미치지 않더라고. 하루하루 냉정을 되찾더니 결국 이혼 수속에 합의했지."

라오진의 조언은 간단하다. 이혼하고 싶다면 '아내가 같이 살고 싶지 않은 남자가 돼라.' 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혼하고 싶다면 '실직'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혼할 수 없다고 버티는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었으며 앞으로 평생 당신이 벌어주는 밥을 먹을 생각이다.'고 말해보라. 그렇게 몇 달만 놀다보면 아내들은 십중팔구 이혼에 응할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와 아내를 잃은 당사자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낼까. 진정 이혼을 원한다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하나? 너무 가혹한가?

'이혼 지침서'라는 제목 아래 3편의 중단편이 묶여 있다. 장예모가 감독하고 공리가 주연한 영화 '홍등'의 원작 '처첩성군', 표제작인 '이혼지침서', 전쟁터에서 만난 바보 소년과 떠돌이 소녀의 사연을 담은 '등불 세 개' 등이다. '처첩성군'은 첩을 두는 중국사회를 풍자한 중편인데, 중국 근대 소설가 루쉰의 '아 Q 정전' 혹은 '광인일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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