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기자'] 뮤지컬 '캣츠' 오리지널팀 공연관람

입력 2007-06-21 16:39:10

이덕기(35)씨는 경북대학교에서 현대희곡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경북대 국문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공연 예술에 관심이 많아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연극과 뮤지컬 등의 공연을 관람해 왔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지만 순수하게 뮤지컬 공연 관람 자체를 즐기는 공연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가 지난 주 캣츠 오리지널팀 공연장인 오페라하우스를 찾았다.

102%의 객석 점유율, 그리고 95%의 경이적인 사전 예매율. 2003-2004 빅탑 시어터의 '캐츠' 공연은 문화의 불모지 대구에 그야말로 일대 사건이었다. 연극 공연은 물론이요, 대중가수들의 콘서트 투어에서도 대구는 껄끄러운 도시였다. 객석 점유율은 말할 것도 없고, 공연 당일 객석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경직된 탓에 공연자들은 너나없이 힘겨움을 호소했더랬다. 무대에 선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무대와 함께 호흡하고 열광하는 객석의 에너지가 아니겠는가. 어딘가 딱딱하고 경직된 객석의 공기는 가뜩이나 문화적 기반이 척박한 이 도시를 더욱 척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적어도 필자에게 빅탑 시어터 공연이 일대 사건이었던 이유는 객석 점유율과 사전 예매율이라는 수치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대구답지 않은' 그 열기에 있었다.

◇ 유독 문화 컨텐츠에 인색한 대구

고양이들의 등장에서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관객들은 객석 통로에 불현듯 나타난 고양이들에게 깜짝 놀라면서도 기분 좋은 탄성을 연해 내질렀다. 고양이의 화려한 춤이 절정을 향해 치달을 때면 약속한 듯이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고, 배우의 손동작 하나, 눈짓 하나에도 즉각적인 반응이 일었다. 연출의 의도가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에서 모두 관철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만큼 관객들은 정말이지 성실했고, 열정적이었다. 함께 관극을 했던 필자로서는 '저렇게나 재미가 있나'하고 의아해하기까지 했더랬다. 정말 사건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2003년 공연의 성공은 물론 공연 자체의 완성도가 가장 큰 요인이겠으나, 대구라는 도시가 갖는 특수성과도 관련이 있다. 이를테면 그간 대구는 너무나 볼거리가 없었다. 흔히들 대구를 두고 소비도시라고 말들을 한다. 그만큼 소비성향이 강한 도시라는 얘기인데, 유독 문화적인 컨텐츠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도시가 또한 대구이다. 그런데다가 '안정지향'으로 요약할 수 있는 대구시민들의 성향 또한 한몫을 한다.

정치적 성향은 말할 것도 없고 문화적 성향에 있어서도 대구시민들은 '안정지향'이 강해 검증되지 않은 컨텐츠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인색하다. 오리지널팀이 공연하는 뮤지컬 의 공연기획은 그런 점에서 대구시민들의 안정지향의 문화적 성향에 잘 맞아떨어진 기획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이를테면 대구의 지역색은 선거철에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 배우가 아니라 원래 고양이 같은 움직임

3년여가 흘러 젤리클 고양이들이 다시 대구를 찾았다. 이제 대구는 서울을 제치고(!) 뮤지컬 한국 투어의 첫 공연지이자, 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열리는 도시이다. 이 고양이들은 과연 자신들이 이 도시에 행한 기적을 알까. 뮤지컬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던 이 도시는 이제 '뮤지컬의 도시'를 선언하고 나섰다. 젤리클 고양이들이 초대된 것은 그런 점에서 필연이다.

공연장은 보다 안정적이고, 보다 럭셔리한 오페라 하우스다. 장비나 여타의 조건이 문제였겠으나 다시 한번 천막공연을 기대했던 필자로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천막무대가 이 공연과도 더 잘 어울리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른바 빅4라고 부르는 뮤지컬 레퍼토리 가운데 는 가장 많은 볼거리를 지닌 작품이다. 역으로 이 작품은 어쩌면 가장 빈약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이야기보다는 볼거리에 치중하는 작품이란 얘기다. 천막무대의 매력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마치 세계 유명 곡예단의 서커스를 보러가는 듯한 기분, 대단히 신비롭고 화려한 볼거리를 본다는 느낌, 이런 것들이 천막무대와 잘 맞아떨어진다. 게다가 객석 사이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고양이들이 장난을 치고 아양을 떨기에 오페라 하우스는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든다.

젤리클 고양이들의 비현실적일 정도의 유연함과 고혹적인 자태는 여전했다. 각각의 넘버가 갖는 개성과 매력 또한 여전했으며, 약 스무 마리 남짓의 젤리클 고양이들이 엮어가는 군무와 앙상블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 매력으로 "Memory"를 비롯한 유명 넘버를 꼽지만, 개인적으로는 가 가진 가장 커다란 매력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잘 훈련된 배우의 육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만하면서 파워풀한 럼 텀 터거, 그가 펼쳐내는 마술보다도 그 화려한 아크로배틱이 인상에 남는 미스터 미스토펠리스, 모든 춤의 리더 빅토리아, 그리고 너무나 섹시한 페르시아 고양이 카산드라 등, 말 그대로 고양이 그 자체인 이 배우들은 마치 원래 그렇게 타고나기라도 했다는 듯이 자유자재의 연기를 펼친다. 그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관객들은 아마도 이들이 그러한 연기를 위해 흘렸어야 했을 땀과 노력을 떠올리지 못할는지도 모르겠다.

◇ 단언컨대 정말 섹시한 카산드라

고양이의 육체를 강조하는 것은 이 작품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뮤지컬 는 이야기보다는 그 표현방식을 더욱 중요시하는 컨셉 뮤지컬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래야 고양이들이 벌이는 하룻밤 축제가 전부다. 각각의 넘버는 축제에 참가한 고양이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내용으로 짜여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관건은 그 각각의 캐릭터가 얼마나 생명력을 지니고서 표현되느냐에 있다. 그만큼 배우의 숙련된 신체 언어가 이 작품의 생명이라 하겠다. 배우의 육체는 그저 화려한 '볼거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육체가 얼마나 생생한 캐릭터를 구축하느냐에 따라 이 공연의 성패가 갈리는 것이다. 보기는 쉬워도 하기는 정말 어려운 뮤지컬이다.

화려한 젤리클 축제가 성대한 막을 내리고 집으로 향하는 길. 문득 실라밥의 선물이 떠올랐다. 다만 두 소절을 한국어로 노래했을 뿐인데, 객석의 반응은 대단했다. 사람들은 왜 그리도 좋아라 했을까. 극장 고양이 거스의 회상에 등장하는 해적 그리올타이거의 이야기는 온통 동양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하다. 그 이야기에는 페르시아와 몽고와 중국과 태국이 기묘하게 뒤섞이고, 혼합되어서 그 가운데 하나를 끄집어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어차피 후진국이고 잘 모르는 이방인들이라는 생각에서 그런 이종교배가 가능했으리라.

실라밥의 어색한 한국어 발음에는 그다지 감동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털을 붙이지 않은 페르시아 고양이 카산드라에게 감동했던 필자는 문득 나 자신 또한 그들의 편견에 합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잠깐의 의심을 해보았다. 어쨌건 단언컨대 카산드라는 정말 섹시하다. 흠흠.

◇ 문화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며

내년부터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은 창작극 위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바람직한 방향 설정이고 의당 그러해야 할 것이다. 뮤지컬을 통해 문화도시로 거듭난다는 것은 브로드웨이의 유명 뮤지컬을 수입해서 파는 것과는 전연 별개의 문제다. 가 이 도시에 행한 기적은 어디까지나 대구가 보여준 문화적 가능성에 그 초점이 놓여야 할 것이다. 남은 과제는 그러한 가능성을 현실화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계획과 실천이다. 이제야말로 대구시민들이 '안정지향'의 구태를 벗고 과감히 '모험'에 나서야 할 때이다. 갈림길에 선 것이다.

이덕기 (경북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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