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출한 인물이 태어난 곳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평범한 집은 아닐 것이다. 집 주위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고, 지세(地勢)가 만만치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얼핏 좋은 집터에서 뛰어난 인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풍수지리(風水地理)적 관점에 젖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20세기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이들의 생가(生家)를 둘러보면 상당수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취재팀은 경남, 전라남·북, 충청 지역(대구·경북 제외)에서 배출된 인물들의 생가 10여 곳을 찾아봤다.
■그의 의기가 느껴지는 생가=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1885~1943)생가(문화재자료 제193호). 안채와 사랑채, 부속건물 등으로 이뤄진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양반 집이다. 집터가 넓고 건물이 깔끔하다. 집 뒤는 청룡 형상의 산이 자리 잡고 있고 앞에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백산은 가산을 털어 학교를 세우고 사업을 하면서 독립군의 군자금을 댔다. 돈을 만졌을 망정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꼿꼿하게 외길로 살았던 백산의 인품과 의기가 느껴지는 집이다. 주민 차영섭(66) 씨는 "이곳은 강진 안씨 집성촌으로 뛰어난 인물을 대거 배출한 의령 최고의 마을"이라면서 "백산 집안은 수십 리 인근까지 논밭을 갖고 있을 정도로 대지주였다."고 했다.
삼성그룹 이병철(1910~1987) 전 회장의 생가도 빠트릴 수 없다. 부림면에서 고개를 넘으면 정곡면 장내마을이 나오는데 동네 안쪽에 큰 기와집이 몇 채 서 있다. 의령군 최대 지주였던 이 전 회장의 세 할아버지가 살던 집이다. 그 중 산 아래 제일 널찍한 집이 이 전 회장의 생가인데 600여 평의 마당에 깔끔하게 복원된 안채와 사랑채가 있다. 이곳에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이 태어난 곳을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안채와 사랑채를 수리하면서 공사를 잘못해 집안 전체가 칙칙한 느낌을 준다. 흙빛의 나무 기둥과 서까래를 써 마치 절간 같다."고 했다.
10여m 앞쪽에는 이 전 회장이 결혼한 후 분가해 살던 집이 있다. 이건희 회장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병철 회장 별장'으로 알려져 있고 넓은 마당에 한옥 한 채가 단정하게 서 있다. 관리인은 6·25전쟁 당시 포격으로 부서진 것을 1964년 이 전 회장이 '고향에 집이 있어야 한다.'며 터를 넓혀 다시 세웠다고 했다. 한 주민은 "이 전 회장 때문에 의령 사람들은 1950, 60년대 제일제당, 제일모직에서 일을 많이 해 보릿고개를 몰랐다."고 했다.
인상적인 곳은 진주시 하촌동의 가수 남인수(본명 강문수·1918~1962) 생가가 아닐까. 일제강점기 '애수의 소야곡' '낙화유수' 등의 히트곡을 낸 그가 태어난 곳(등록문화재 제153호)은 진주 강씨 집성촌으로 마을 가운데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집이었다. 집은 낡고 오래됐고 초가집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다. 그의 집안은 그리 궁핍하지 않았지만 둘째 부인에게서 태어나 어릴 때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주민 강대균(75) 씨는 "그는 마을 건너편 정자나무 아래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키가 크고 잘 생겼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하지 않고 산속에서 목청 틔운다고 고함만 빽빽 질렀다고 한다."며 웃었다.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생가=가장 유명한 곳은 전남 강진의 영랑생가가 아닐까. 유홍준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때문이다. 서정시인 김윤식(1903~1950)이 태어난 곳인 만큼 분위기가 그윽하고 조용하다. 뒤편에 대나무밭이 울창하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다. 영랑의 부친은 강진 3대 부자 중 한 명이었다. 강진군 관계자는 "주말에 하루 300~400명이 찾아온다."고 했다.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여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은 대구의 상화(尙火)고택과는 달리, 생가를 잘 가꾼 강진군이 새삼 부러워진다.
전남 화순군 동북면 독상리의 서양화가 오지호(1905~1982)의 생가(등록문화재 제274호)도 볼 만 하다. 생가는 정면에 7칸의 사랑채와 같은 규모의 안채가 앞뒤로 자리 잡고 있다. 오지호의 부친은 군수를 지냈고 화순 제일의 갑부였다고 한다. 마당에는 4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어 운치를 더해 준다. 그러나 열흘 전 안채 뒤편 사당이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되고 며칠 전 생가를 지키던 화가의 형수마저 사망해 다소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의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1891~1968)생가는 초가지붕과 낡고 가느다란 기둥에서 고풍스러움이 자연스레 묻어났다. 그가 애란(愛蘭) 애주(愛酒) 애서(愛書)를 하며 말년을 보낸 곳이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의 시인 정지용(1902~1950) 생가. 집 앞에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초가집 두 채가 서 있다. 군에서 1990년대 복원해 다소 인위적인 맛이 난다. 시인의 집안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전형적인 농촌 집이다.
그곳에서 200m 위쪽으로 올라가면 교동리에 육영수(1925~1974) 여사의 생가가 있다. 1600년대 이후 삼 정승이 살던 1천800여 평 크기의 큰 집인데 1918년 육 여사의 아버지 종관 씨가 매입했다. 본채, 사랑채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었지만 모두 없어졌고 옥천군청이 복원공사를 하면서 본채 하나만 덜렁 세워놓았다. 주민들은 "육 여사의 아버지가 농사와 장사를 하면서 부를 쌓았고 생가 앞 논밭과 건너편 산도 육씨 가문 소유"라고 했다.
부의 대물림인가. 부유한 집안에서 뛰어난 인물이 대거 나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들은 군인, 공무원이 됐고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이들은 학자, 예술가가 된 것을 보면 인간의 삶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21세기에 태어나는 인물들의 생가는 먼 미래에 어찌될까? 아파트 숲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물의 생가는 보존될 가치가 있을 것인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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