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사육신 처형

입력 2007-06-08 07:52:29

1453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아 1455년에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했다. 집현전 학사로서 세종의 신임을 받고, 문종으로부터 나이 어린 단종을 잘 보필하라는 고명을 받은 死六臣(사육신)은 단종을 복위시킬 것을 결의하고 그 기회를 살피고 있었다.

1456년 본국으로 떠나는 명나라 사신의 환송연에서 세조(수양대군)를 처치하기로 계획하였으나 집현전 출신의 동료 김질이 告變(고변)하여 주동자와 동조자가 모두 체포되었다. 세조는 이들을 직접 신문하였는데, 갖은 고문과 회유에도 사육신은 굴복하지 않았다. 성삼문은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를 꿰고 팔을 잘라내는 잔학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세조를 '전하'라 하지 않고 '나리'라 불러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사육신들도 진상을 자백하면 용서한다는 말을 거부하고 형벌을 받다가 1456년 6월 8일 처형되었다. 성삼문·박팽년·유응부·이개는 작형, 하위지는 참살되었고 유성원은 잡히기 전에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하였다.

또 사육신의 가족중 남자는 모두 살해당하였고 여자는 노비로 끌려갔다. 사육신은 1691년 숙종에 의해 관직에 복구되고 시호가 내려졌으며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도록 함으로써 국가적인 공인이 이루어졌다.

▶1689년 조선 문신 송시열 사망 ▶1997년 시인 박재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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